한국은행이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기존보다 0.7%포인트 낮은 0.8%로 조정했다. 0%대 성장률 배경은 미국의 관세 정책과 국내 내수 부진이다. 한은은 미국의 관세 협상 결과에 따라 상‧하방 리스크가 달라질 것으로 봤다. 새 정부의 경기 부양책 등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국은행은 29일 수정경제전망을 통해 올해 경제성장률을 0.8%로 예상했다. 지난 2월 전망인 1.5%에서 큰 폭으로 떨어졌다. 지난 40여년 간 우리 경제가 1% 미만 성장했던 때는 1980년(-1.6%), 1998년(-5.1%), 2009년(0.8%), 2020년(-0.7%) 등 금융위기와 맞물려 있다.
올해 분기별로는 1분기 역성장(-0.2%)을 기록한 가운데 2분기에도 당초 예상인 0.8%에 못 미치는 0.5% 성장을 기록할 것으로 봤다. 3분기, 4분기 전망치는 각각 0.7%, 0.6% 수준이다. 한은은 내년 성장률 전망치도 1.8%에서 1.6%로 하향 조정했다.
성장률이 크게 떨어진 것은 미국의 관세 정책 강도가 2월보다 광범위해지고 관세율이 높아진 영향을 받았다.
김웅 부총재보는 “성장률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다양하겠지만 미국의 관세가 0.35%포인트를 끌어내렸다”고 설명했다.
한은은 지난 2월엔 5~10% 수준의 관세를 부과할 것을 전제했는데 이번 전망에서는 기본 10%, 품목 25% 관세를 적용했다.
한은은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재점화하고 미국 상호관세가 유예 기간 후 절반 정도 다시 높아질 경우 올해와 내년 성장률이 각각 0.7%, 1.2%로 떨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반면 미국 관세율이 올해 말까지 상당 폭 인하될 경우 올해 0.9%, 내년 1.8%로 성장률이 각각 높아질 수 있다는 낙관 시나리오도 제시했다. 이날 미국 연방법원이 트럼프 행정부의 상호 관세 정책을 위협으로 판단하고 7월 발효에 제동을 건 만큼 0.9%보다 조금 더 높아질 수 있다는 게 한은의 설명이다.
정치적 불확실성 등 국내 요인으로 민간 소비 심리 회복이 예상보다 지연된 탓도 있다. 내수 부진 가운데서도 건설 투자 부진의 영향이 가장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이날 하향된 0.7%포인트 성장률 중 건설투자 부문이 차지하는 몫이 0.4%포인트 수준이다. 나머지는 둔화 폭이 확대된 수출이 성장률을 0.2%포인트 낮췄고, 2분기 회복세가 예상보다 더딘 민간 소비가 성장률을 0.15%포인트 낮췄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이날 오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건설의 영향이 가장 컸다”며 “성장률 전망치를 0.4%포인트 정도 낮추는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전했다.
한은이 전망한 올해 GDP성장률 전망을 보면 민간소비는 1.1%, 설비투자는 1.8% 수준이다. 2월 전망 보다 각각 0.3%포인트, 0.8%포인트 낮아졌다.
건설투자는 -2.8%에서 -6.1%로 전망치가 크게 하향 조정됐고 재화수출은 0.9%에서 -0.1%로, 재화수입은 1.1%에서 0.2%로 각각 조정됐다.
한은은 하반기 이후부터 내수 개선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했다. 금리인하 및 추경 효과가 경제심리 회복에 도움을 줄 것이란 분석이다.
한편 한은은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를 1.9%로 유지했다. 내년 전망치는 기존 1.9%에서 1.8%로 0.1%포인트 하향 조정했다. 올해 경상수지 흑자 규모는 820억달러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했다.
한재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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