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의 임기 시작과 함께 상법 개정안,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 주 4.5일제 등 법안 추진이 속도를 낸다. 재계 근심은 커진다. 이들 법안이 기업 경영권과 관련한 외부 세력의 간섭과 노동 유연성 저하 등 경영에 직접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기업 지배구조 개편과 노동자의 권익 강화 등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웠다. 대통령 취임 이후에는 국회 다수 의석을 바탕으로 주요 법안의 조기 처리를 예고하고 있다. 경제계 일각에서는 이같은 ‘친노동 정책’ 시행으로 기업 환경이 크게 변화해 경영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 대통령은 앞서 2일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상법 개정은 (취임 후) 2~3주 안에 충분히 가능하다”며 집중투표제 확대, 감사위원 분리선출 의무화, 자사주 소각 등 강도 높은 지배구조 개편안을 거론했다. 대주주가 소액주주 의결권을 통제하지 못하게 하고, 물적 분할 시 모회사 주주에게도 신주 인수권을 부여하겠다는 구상도 포함됐다.
재계는 경영권 방어 수단이 거의 사라진다며 반발하는 분위기다. 법무법인 율촌이 4일 발간한 보고서를 살펴보면 집중투표제와 감사위원 분리 선출은 상장사 대주주의 영향력을 약화시켜 외부 공격에 취약하게 만들 수 있다. 특히 자사주 전량 소각 의무화는 행동주의 펀드의 표적이 될 수 있어, 일부 기업은 자진 상장폐지를 검토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노동정책 부문에서는 일명 노란봉투법의 재추진이 예고돼 있다. 대통령직 인수위 정책팀장을 지낸 이한주 민주연구원장은 4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노란봉투법은 바로 추진할 것”이라며 입법 강행 의지를 드러냈다. 이 법안은 하청노동자에 대한 원청 책임을 강화하고, 기업이 파업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범위를 제한하는 내용을 담았다.
재계는 노란봉투법이 사용자 정의가 지나치게 확장돼 위헌 소지가 있다며 반발한다.
율촌은 보고서에서 “기업의 직업 수행 자유, 재산권, 법적 예측 가능성 등이 침해될 수 있어 헌법소원 가능성까지 배제할 수 없다”고 진단했다.
주 4.5일제도 경영 부담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장기적으로 주 4일제를 도입하되, 시범사업으로 주 4.5일제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정부 차원의 실노동시간 단축 로드맵 마련을 예고한 상태다.
경제계는 산업별 현실과 유연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은 앞서 주 4.5일제 등 대선 후보들의 법정 근로시간 단축 공약과 관련해 “업종의 특성과 현실에 맞게 근로 시간이 유연하게 운영돼야 한다”며 “근로 시간 문제는 노사 합의를 통해 기업들이 자율성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율촌 보고서 역시 “일률적 근로시간 단축은 중소기업과 제조업 중심 산업에 타격을 줄 수 있다”며 “임금 감소를 보전하는 정부 지원책이 병행되지 않으면 실현 가능성이 낮다”고 분석했다.
경제계 한 관계자는 “새 정부가 민생과 경제 회복을 최우선 과제로 삼겠다고 했지만, 기업 활동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법안이 속도전으로 추진되면 오히려 투자가 위축될 수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이광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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