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그룹이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첫 조(兆) 단위 투자 포문을 열었다. 재계는 이번 LG디스플레이의 투자를 ‘새 정부에 대한 화답’이자 정책 방향성에 보조를 맞추는 신호로 해석하고 있다. 또 삼성과 SK그룹, 현대차그룹 등 다른 대기업도 조만간 ‘투자 보따리’를 풀 것인지에 이목을 집중한다. 이들 기업은 정부의 국가첨단전략산업 관련 보조금과 세제 혜택을 전략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향후 투자 시점을 조율할 것으로 보인다.
LG디스플레이, 李정부 출범 후 첫 ‘조단위’ 투자…OLED로 방향 확실히
LG디스플레이는 경기도 파주 사업장을 중심으로 차세대 OLED 설비에 총 1조2600억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이 중 약 7000억원을 파주에 집중한다. 이번 투자에 쓰이는 자금은 중국 광저우 LCD 공장 매각 대금(2조2466억원) 중 일부로, 사실상 리쇼어링 사례다.
정부는 국가전략기술 복귀 기업에 최대 500억원까지 보조금을 지급할 수 있도록 제도화 했다. OLED는 디스플레이 분야의 핵심 국가전략기술로 지정돼 있다. 이번 LG디스플레이의 투자가 정부의 정책 신호에 가장 먼저 반응한 첫 사례가 된 셈이다.
LG디스플레이는 이번 투자를 통해 대형 OLED부터 IT·모바일용 중소형 OLED 패널까지 전 라인업 경쟁력을 강화할 계획이다. 중국의 OLED 추격이 가속화되는 가운데 차별화된 기술력과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생태계와의 동반성장으로 격차 벌리기에 나선다. 지역경제 활성화와 고용 창출 효과도 기대된다.
SK, AWS와 손잡고 7조원대 AI 인프라 구축 나서
두 번째 주자는 SK그룹이다. SK는 아마존웹서비스(AWS)와 협력해 울산 미포 국가산단에 국내 최대 규모인 100메가와트(MW) AI 전용 데이터센터를 건설할 예정이다. 총 투자액은 약 7조원에 달한다. GPU 6만장이 투입되는 국내 최대급 AI 인프라가 될 전망이다.
6월 중 출범식을 열고, 8월 기공식을 진행한다. 단순 클라우드 서버가 아닌 AI 연산에 특화된 고부가 인프라를 2029년까지 100MW 규모로 완공하는 것이 목표다. SK는 이번 투자를 반도체 밸류체인·데이터 인프라·에너지 솔루션까지 확장되는 전략 사업의 거점으로 보고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20일 울산전시컨벤션센터(UECO)에서 열린 이재명 대통령 주재 AI 글로벌 협력 기업 간담회에서 “울산 AI데이터센터는 최고의 AI 고속도로, 인프라의 필수적 역할을 할 것”이라며 “현재 100MW로 건설하고 있지만, 향후 1GW(기가와트)로 확장해 국내 AI 수요에 대응하는 글로벌 허브 역할로 발돋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삼성, 조만간 묵직한 한방? 글로벌 전략회의 결론 주목
삼성전자는 17~19일 글로벌 전략회의를 열고 하반기 투자 방안을 집중 검토했다. 아직 구체적인 발표는 없지만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13일 이 대통령과 간담회에서 “AI, 반도체, 바이오 투자를 늘리고 있다”고 언급한 만큼, 대규모 투자 발표가 임박했다는 관측에 힘이 실린다.
삼성전자는 2024년 복합 위기에도 연간 시설투자와 연구개발 투자를 역대 최대 규모로 시행했다. 올해도 이 같은 기조를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전자는 특히 차세대 AI 메모리인 6세대 HBM(HBM4) 양산을 준비 중이며, 바이오 분야에선 삼성바이오로직스 제5공장 완공 및 6공장 이사회 승인 대기하고 있다. 이재용 회장은 13일 “AI를 전통 산업에 접목해 생산성을 높이고 이를 통해 고임금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현대차, 24.3조 국내 투자 확정…세부 집행 대기 중
현대차그룹은 올해 국내에 총 24조3000억 원 규모의 투자를 단행한다. 이는 전년 대비 19% 증가한 역대 최대 규모 투자다. 연구개발(R&D), 전략투자, 생산설비 등에 나눠 투입된다. 전기차 및 수소차 생산라인 확장, 부품 생태계 재정비 등이 포함된다.
장재훈 현대차 부회장은 “해외 투자가 국내를 위축시키지는 않는다”며 해외 확장과 국내 산업기반 강화를 동시에 추진하는 전략임을 분명히 했다.
재계 한 관계자는 “대외 불확실성, 통상 리스크 등으로 대기업이 선뜻 투자에 나서기 어려운 상황”이라면서도 “정부가 명확한 방향성과 지원 의지를 보여주면 민간도 응답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광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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