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씨는 보이스피싱이 의심돼 112에 신고 전화를 걸었다. 수화기 너머로 “112 신고센터입니다”라는 안내가 들렸다. 사실 전화를 받은 이는 경찰이 아니었다. 바로 보이스피싱 범죄자였다.
A씨의 휴대폰은 이미 악성 앱에 감염돼 있었다. 모든 통화는 범죄 조직으로 우회 연결되고 있었지만 A씨는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 / 챗GPT 생성
. / 챗GPT 생성

피해 폭증…1조원 돌파 ‘시간문제’

29일 LG유플러스는 자사 보안센터에서 실제 보이스피싱 악성앱 작동 과정을 시연했다. 화면이 꺼진 스마트폰으로 범죄자는 피해자의 위치와 통화 내용을 실시간 확인했다. 피해자가 112로 전화를 걸자 화면에는 ‘112’가 떴지만 연결된 상대는 조직원이었다. 피해자 모르게 카메라와 마이크가 작동되며 실시간 감시까지 가능했다.

홍관희 LG유플러스 정보보안센터장(전무)은 “보이스피싱 악성앱이 한 번 설치되면 피해자는 모든 통신 경로를 범죄자에 장악당한 상태가 된다”며 “112에 신고해도 경찰이 받지 못하고, 통화·영상·위치까지 조직에 노출된다”고 설명했다.

보이스피싱은 더 교묘하고 정교해졌다. 단순 전화 사기는 옛말이다. 서울동부지검에 따르면 캄보디아 기반 범죄조직은 ‘로맨스팀’ ‘해킹팀’ ‘리딩팀’ 등 7개 조직으로 기업처럼 운영했다. 딥보이스 기술로 목소리를 복제하거나, 딥페이크로 얼굴을 합성해 가족을 사칭하는 수법도 퍼지고 있다.

올해 상반기 보이스피싱 피해만 6421억원에 달한다는 점도 그 방증이다. 이미 지난해 연간 피해액(6481억원)에 육박했다. 발생 건수는 1만2339건으로 23% 증가했고 건당 평균 피해액은 5204만원으로 전년 대비 61% 뛰었다. 1억원 이상 고액 피해도 1548건에 이른다. 스미싱도 전년 대비 4.4배 늘어난 220만건으로 집계됐다.

보이스피싱 범죄 조직이 실제 사용하는 서버 화면이다. 112로 '강발설정'후 피해자에게 전화를 걸면 화면에는 피해자 휴대폰 화면에는 112가 뜬다. / 홍주연 기자 
보이스피싱 범죄 조직이 실제 사용하는 서버 화면이다. 112로 '강발설정'후 피해자에게 전화를 걸면 화면에는 피해자 휴대폰 화면에는 112가 뜬다. / 홍주연 기자 

정부와 통신사, AI 차단망 공동 구축

상황이 이렇자 정부는 통신사와 함께 AI 기반 사전 차단 시스템을 공동으로 구축하며 대응 체계를 강화하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통신사·금융사·수사기관이 참여하는 ‘보이스피싱 AI 플랫폼’을 연내 구축하기로 했다.

보이스피싱 AI 플랫폼은 통화 패턴, 금융 이상거래, 범죄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연계 분석해 의심 계좌를 차단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 같은 기술 대응은 법적 검증도 거쳤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KT와 LG유플러스가 신청한 AI 보이스피싱 탐지 서비스에 대해 개인정보 영향평가를 완료하고 조건부 승인했다. 통신사는 이상 통화 패턴을 분석해 금융사에 전달하고, 금융사는 이를 바탕으로 의심 계좌를 모니터링해 출금까지 차단할 수 있다. 정·오탐 데이터는 상호 회신해 AI 모델의 정밀도도 지속 개선하도록 의무화됐다.

이런 기반 위에서 통신3사는 각자 고유한 대응 체계를 운영 중이다. KT는 30일 ‘AI 보이스피싱 탐지 2.0’을 상용화한다. 딥보이스 탐지와 화자인식을 통합해 91.6%의 탐지 정확도를 기록했다. 약 710억원의 피해를 사전에 막기도 했다.

SK텔레콤은 ‘스캠뱅가드’ 플랫폼으로 통신·금융 데이터를 연계 분석하고 있다. 올해 초 IBK기업은행과의 테스트에서는 2주 만에 26건의 피해를 막아 약 5억9000만원의 손실을 차단했다. AI 서비스 ‘에이닷’을 통해 의심 번호에 대해 실시간 경고 메시지도 제공하고 있다.

LG유플러스는 AI 분석 외에도 악성 앱 서버를 직접 추적해 경찰에 제공한다. 2분기 기준, 전체 보이스피싱 사건 중 약 23%는 유플러스가 제공한 정보에서 시작됐다. AI 에이전트 ‘익시오’는 월 2000건 이상의 의심 전화를 감지하고 있다.

홍관희 LG유플러스 전무는 "악성 앱이 설치되면 전화를 어디로 걸든 범죄 조직이 가로채게 되고, 스마트폰 카메라·마이크 등을 통해 실시간 도·감청이 가능해져 피해자는 보이스피싱에 취약해지고 심리적으로도 위축된다"며 "피해자를 위한 시급한 보호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보이스피싱은 통신사 혼자 뿌리뽑을 수 없는 문제다"라며 "통신사, 단말기 제조사, 금융사 등 민간 영역과 공공 영역의 유관 부서·기관이 모두 모여 연합 전선을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홍주연 기자
jyhong@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