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테슬라와 약 165억달러(약 23조원) 규모의 반도체 위탁생산 계약을 체결했다. 미국 반도체 공급망 내 입지를 다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업계 일각에서는 미국 정치 리스크에 노출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공개적으로 대립각을 세운 상황 때문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2023년 5월 10일 삼성전자 북미 반도체연구소에서 일론 머스크 CEO와 미팅을 가진 후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 / 삼성전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2023년 5월 10일 삼성전자 북미 반도체연구소에서 일론 머스크 CEO와 미팅을 가진 후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 / 삼성전자

삼성전자는 28일 테슬라와 약 165억달러(23조원) 규모의 반도체 위탁생산 계약을 체결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는 29일(현지시각) 자신의 SNS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화상으로 만나 파트너십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는 미국 텍사스 테일러 공장에서 테슬라의 차세대 ‘AI6’ 칩을 2026년 하반기부터 생산한다. 이 칩은 자율주행차와 휴머노이드 로봇 ‘옵티머스’에 탑재될 예정이다. 머스크 CEO는 “165억달러는 최소 금액으로 실제 생산량은 훨씬 많을 수 있다”고 언급했다. 이 계약으로 지연된 테일러 공장의 양산 일정이 앞당겨 질 수 있게 됐다.

문제는 머스크 CEO가 트럼프 대통령과 전면 충돌하면서 리스크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전기차 세액공제 제도를 7년 앞당겨 올해 9월 말 종료하는 '하나의 크고 아름다운 법안(OBBBA)'에 서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1일 이와 관련해 “머스크는 역사상 어떤 사람보다 훨씬 많은 보조금을 받고 있을지 모른다”며 “보조금이 없으면 사업을 접고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돌아가야 할 수도 있다”고 압박했다.

이에 머스크 CEO는 “그가 말하는 ‘보조금’은 존재하지도 않는다”며 “트럼프는 지속가능 에너지 지원을 모두 폐지하거나 종료시켰고, 석유·가스 산업 보조금만 유지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정치적 대립이 격화되는 상황에서 삼성전자가 테슬라와 긴밀한 동맹을 맺은 것이 득보다 실이 클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실제 업계 한 관계자는 “머스크를 겨냥한 정책 변화가 있을 수 있고, 이 여파가 테슬라와 공급 계약을 맺은 삼성전자에까지 미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다만 삼성전자가 테슬라와 계약 이행 과정에서 정치적 리스크로 불이익을 당할 가능성은 낮을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삼성전자와 테슬라의 협력 자체는 미국 중심 반도체 공급망 재편에 속도를 붙이는 역할을 할 수 있어서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반도체 공급망을 미국 중심으로 재편하겠다는 의지를 지속 밝혀왔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전기차 보조금 폐지 결정과 달리 바이든 행정부가 제정한 ‘반도체 및 과학법’의 보조금과 세액공제 혜택은 유지·확대했다. 반도체 시설 세액공제율은 기존 25%에서 35%로 상향됐고, 삼성전자는 이 법의 수혜 대상에 포함됐다.

삼성전자는 2030년까지 미국 반도체 생산 거점 구축을 위해 370억달러(약 54조원) 이상을 투자할 계획이다. 이미 추가 투자를 결정한 대만 TSMC 외에 삼성전자의 추가 투자를 이끌어내야 하는 트럼프 행정부 입장에선 양사의 협력은 반가운 소식일 수밖에 없다.

양사의 계약은 지연된 삼성전자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 파운드리 공장 가동 계획에도 변화를 준 것으로 보인다. 테일러 공장은 당초 2024년 말 가동 예정이었으나, 고객사 확보 지연과 수요 둔화로 연기됐다. 삼성전자는 이번 테슬라 물량 확보로 가동 지연 리스크를 해소하게 됐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테슬라와 협력을 계기로 미국 내 투자를 확대하게 되면 머스크 CEO를 향한 트럼프 대통령의 태도 역시 완화할 가능성도 있다"며 "삼성전자 역시 빅테크 고객을 추가로 확보하며 미 행정부와 공급망 협력에서 입지를 높일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양사의 동맹이 우리 정부의 대미 관세 협상 타결의 지렛대로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앞서 이재용 회장은 관세 협상 지원을 위해 미국 워싱턴DC를 방문했다. 머스크 CEO와도 직접 만나 협력 방안을 논의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광영 기자
gwang0e@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