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양국이 상호관세율을 기존 25%에서 15%로 낮추기로 합의하면서 전자부품업계가 한숨을 돌렸다. 하지만 반도체 등 일부 품목에는 여전히 고율 관세가 부과될 가능성이 남아 있어 업계는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미국 테네시(Tennessee)주 클락스빌(Clarksville)에서 준공된 'LG전자 테네시 세탁기공장'에서 직원들이 세탁기를 생산하고 있다. / LG전자
미국 테네시(Tennessee)주 클락스빌(Clarksville)에서 준공된 'LG전자 테네시 세탁기공장'에서 직원들이 세탁기를 생산하고 있다. / LG전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30일(현지시각) “한국이 미국에 3500억달러(약 487조원) 규모의 투자를 약속함에 따라 상호관세율을 15%로 낮추기로 했다”고 밝혔다.

다만 자동차·철강 등 대미 주력 수출 품목은 언급하지 않았다.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은 “한국은 반도체와 의약품에서 다른 어떤 나라보다 불리하게 대우받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양국은 2주 안으로 이재명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 간 정상회담을 열고 품목별 관세 적용 범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업계는 이번 합의로 당장의 부담은 줄었지만, 미국 주도의 공급망 재편 흐름은 거스를 수 없다고 보고 있다.

반도체 업계는 이미 고대역폭메모리(HBM), 패키징 등 미국 내 생산 시설 투자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품목별 관세가 확정되기 전까지는 안심할 수 없다는 분위기다. 특히 미국 정부가 장비·소재 분야의 수출 규제를 강화할 경우, 국내 생산비용이 높아지고 현지 이전 압박도 거세질 수 있다.

삼성전자는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 파운드리 공장 외에 테일러 지역에 신규 파운드리 공장을 건설 중으러 2030년까지 370억달러(약 54조원) 이상을 투자할 계획이다. 최근에는 테슬라와 22조8000억원 규모의 AI6 반도체 위탁생산 계약을 체결했다. 이는 2033년말까지 이어지는 단일 기업 간 최대 규모 계약이다. 업계는 이번 계약이 미국 내 반도체 공급망 강화 기조와 맞물려 통상 협상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SK하이닉스도 인디애나주 웨스트라피엣에 HBM 패키징 센터 설립을 검토하고 있다.

디스플레이업계 역시 관세 리스크를 주시하고 있다.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는 미국 고객사와의 계약 구조 변화 가능성을 점검 중이다. 현지 생산거점이 없는 상황에서 관세 부담이 높아질 경우, 현지 조립 요구나 가격 인하 압박이 현실화될 수 있어서다.

삼성전기는 멕시코 자동차 전장용 카메라모듈 공장 건설 계획을 일시 보류하고 투자 전략을 재검토하고 있다. 

가전 부문에서는 삼성전자와 LG전자가 미국의 통상 압력에 대응해 현지 생산을 최대한 확대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사우스캐롤라이나 공장에서, LG전자는 테네시 공장에서 세탁기 등 주요 가전제품을 양산하며 공장 가동률을 최대치로 끌어올리고 있다.

두 회사는 멕시코에도 TV, 냉장고, 에어컨, 오븐 등 다양한 제품 생산기지를 운영 중이며, 이들 제품 상당수를 미국 시장으로 수출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미국 정부가 멕시코산 제품에 고율 관세를 부과할 가능성이 거론되면서 삼성전자와 LG전자는 관세가 실제 적용될 경우 영향을 받을 제품군과 추가 비용 부담 등을 다각도로 분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LG전자는 세탁기 생산과 관련해 9월부터 멕시코 멕시칼리 지역에 새로운 생산라인을 추가로 가동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관세 리스크에 유연하게 대응하고 공급망 안정성을 확보한다는 전략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25% 관세 부과를 가정한 대응안을 준비해왔는데 15%로 결정된 것은 비교적 낮은 수준이라 다행이다"라며 "국가별 관세 차이에 대응해 멕시코나 북미 지역 내 생산 비중 확대 전략을 계속 이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선율 기자
melody@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