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미국 오스틴 파운드리에서 생산한 자체 설계 고성능 이미지센서를 2027년부터 애플 아이폰에 공급할 예정이다. 업계는 설계부터 제조까지 한꺼번에 맡는 삼성전자의 ‘턴키’ 전략이 애플의 미국 현지 생산 필요성이 커지면서 주효했다고 분석한다. 테슬라에 이어 애플까지 고객사로 확보한 삼성전자의 파운드리·시스템LSI 사업은 신뢰 회복과 수익성 개선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애플은 7일 미국 내 1000억달러 규모의 신규 투자 계획을 발표하며 "텍사스 오스틴에 있는 삼성전자 팹에서 세계 어느 곳에서도 사용된 적 없는 혁신적인 신기술 칩 생산을 위해 협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관련업계는 삼성전자와 애플의 이번 계약을 두고 ‘고객과 경쟁하지 않는다’는 모토로 제조에만 집중해 온 TSMC를 넘어선 결과라며 의미가 크다고 평가한다.
애플은 그동안 아이폰용 이미지센서를 일본 소니에 설계 의뢰하고, 일본 내 TSMC 공장에서 양산해 왔다. 하지만 미국 정부가 반도체 등 전방위 품목에 고율 관세를 예고하고 현지 제조를 압박하면서, 핵심 부품의 미국 내 생산이 불가피해졌다. 설계와 제조를 모두 수행할 수 있는 유일한 대형 업체인 삼성전자는 애플의 현지 생산과 공급망 다변화 과제를 동시에 풀어줄 파트너가 됐다.
삼성전자 2023년부터 메모리·파운드리·패키징을 통합한 턴키 서비스를 강화하며 종합반도체기업(IDM)으로서의 강점을 부각해 왔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턴키 전략이 고객사의 기술 유출 우려를 불러 대형 수주에 걸림돌이 될 것이란 지적이 나왔다.
여기에 파운드리 사업의 공정 수율 문제까지 겹치면서 삼성전자는 장기간 대형 수주에 실패했다. 파운드리·시스템LSI 부문 모두 매 분기 수조원대 적자가 이어졌다. 올해 1분기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은 7.7%로 1위 TSMC(67.6%)와 격차가 커졌고, 중국 SMIC(6.0%)의 거센 추격도 받았다.
업계 일각에서는 실적 부진이 장기화 한 파운드리 사업의 분사 필요성을 꾸준히 제기해 왔다. 하지만 이재용 회장은 파운드리 사업의 부활에 강력한 의지를 내비쳤다. 이 회장은 2024년 10월 한 외신과 인터뷰에서 “(파운드리 사업을) 키우고 싶고 분사하는 데 관심이 없다”고 일축했다.
이후 삼성전자는 7월 28일 테슬라와 22조7647억원 규모의 AI 반도체 공급 계약을 체결했고 불과 열흘 만에 애플 수주까지 성사시키며 반전에 성공했다. 특히 품질 기준이 까다로운 테슬라와 애플을 연달아 고객으로 확보한 것은 턴키 전략에 대한 불신을 일정 부분 해소하는 계기가 됐다. 한때 ‘양날의 검’으로 불리던 턴키 전략이 실질적인 삼성전자의 경쟁력으로 자리잡은 셈이다.
이번 계약은 일본 소니가 사실상 독점해 온 애플 이미지센서 공급망에도 변화를 예고한다. 업계에서는 삼성전자의 이미지센서 ‘아이소셀(ISOCELL)’이 애플 카메라에 채택되면 시장 점유율 확대와 글로벌 레퍼런스 확보 효과를 동시에 거둘 것으로 보고 있다. 2024년 기준 글로벌 이미지센서 시장 점유율은 소니 51.6%, 삼성전자 15.4%다. 연간 2억대 이상 판매되는 아이폰 물량의 일부만 삼성전자로 옮겨와도 점유율 격차는 크게 줄어들 수 있다.
미국 오스틴 공장 생산은 시스템LSI와 파운드리 두 사업부 실적을 동시에 끌어올릴 수 있다.
미 현지 생산을 통한 관세 회피, 대형 고객사 레퍼런스 확보, 공급망 다변화라는 효과가 맞물린다.
박유악 키움증권 연구원은 보고서에서 “2026년 애플 아이폰18용 이미지센서렌즈를 통해 들어오는 빛의 색상과 강도를 전기 신호로 바꿔주는 반도체 양산, 테슬라 등 신규 거래선 확보를 통해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이) 영업 적자의 폭을 축소해 나갈 전망”이라고 분석했다.
이광영 기자
gwang0e@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