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게임사들은 오랜 기간 ‘리니지 라이크’라 불리는 과금 중심 구조와 PVP 전투 구도에 의존해 수익을 극대화해왔다. 대규모 전투와 경쟁, 고액 결제를 통한 성장 모델은 단기간 안정적인 매출을 보장하는 방식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업계 전반에서 동일한 틀을 반복하면서 차별화 부족, 이용자 이탈, 글로벌 확장 한계라는 구조적 문제가 드러나고 있다.
겉은 새 옷, 속은 그대로
리니지 라이크란 엔씨소프트 리니지 시리즈가 확립한 자동 사냥, 과금 강화, PVP 시스템을 차용한 양산형 MMORPG를 뜻한다. 엔씨소프트의 성공 방식을 모방한 국내 게임사들은 잇달아 이 구조를 도입해 매출을 끌어올렸다.
업계에서는 MMORPG 신작이 그래픽 엔진과 외형만 달라졌을 뿐 핵심 구조는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실제로 흥행에 성공한 게임은 캐주얼풍 마비노기 모바일을 제외하면 대부분 리니지처럼 실사형 그래픽을 지향했다. 카카오게임즈 ‘오딘’, 위메이드 ‘나이트 크로우’와 ‘레전드 오브 이미르’, 넷마블 ‘RF 온라인 넥스트’가 대표적이다.
게임사들이 설계한 콘텐츠는 대체로 몬스터 수를 채우는 반복적 필드 사냥을 강제한다. 세계관과 스토리는 초반 컷신에 집중돼 있다. 이후에는 원버튼 퀘스트 진행과 캐릭터 성장에 치중하는 구조다. 일정 레벨에 도달해야 레이드·던전 같은 콘텐츠가 열리기 때문에 스토리를 건너뛸 수밖에 없다.
BM 피로도 역시 높다. 뽑기 확률은 1% 미만으로 다른 장르보다 낮다. 이용자가 레이드나 PVP에서 살아남으려면 높은 등급 아이템을 사실상 확보해야 한다.
이용자 기반도 좁아지고 있다. 고액 결제에 거부감이 적은 30~40대 코어 유저만 남았고 과금 반발과 PVP 피로감으로 젊은 층 신규 유입은 사실상 어렵다. 특히 자동 전투와 P2W(pay to win)는 글로벌 시장에서 ‘거부감의 상징’으로 통한다. 이 때문에 한국산 MMORPG는 대만을 제외한 해외에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모방에서 혁신으로… 중국 게임의 무서운 성장
한국이 리니지 라이크에 머무르는 동안 중국은 과감한 도전으로 장기 성장 기반을 마련했다. 미호요의 ‘원신’이 대표적이다.
원신은 기획 단계부터 중국 내수가 아닌 글로벌 시장을 겨냥했다. ‘젤다의 전설’을 모방했다는 비판을 일본 애니메이션풍 그래픽과 매력적인 캐릭터 수집 요소로 정면 돌파하며 새로운 시장을 열었다. 출시 40개월 만에 글로벌 매출 50억달러(약 6조9000억원)를 달성하며 역대 최단 기록을 세웠다.
중국은 장르 다변화로 해외 시장을 빠르게 공략하고 있다. 전통적 전략·슈팅 장르를 넘어 캐주얼 장르에 새로운 플레이 방식을 접목하며 혁신을 이어가고 있다.
콘솔 시장 성장도 두드러진다. 2024년 중국 콘솔 게임 매출은 44억8800만위안(약 8690억원)으로 전년 대비 55% 이상 증가했다. ‘검은 신화: 오공’ 같은 대작 출시는 시장 확대에 힘을 실었다.
과금 유도·반복 콘텐츠, 글로벌에선 한계
글로벌 게이머는 짧은 세션 플레이를 선호한다. 배틀로얄·MOBA 장르처럼 한 판에 20~30분 안에 승부가 나는 게임이 인기를 끄는 이유다. 업계에서는 MMORPG 특유의 장시간 접속과 반복 파밍 구조가 오늘날 게이머의 플레이 방식과 맞지 않는다고 본다.
북미·유럽은 구독제와 패키지 구매 방식에 익숙하다. 과도한 과금 유도는 오히려 이탈 요인으로 작용한다. 실제로 엔씨소프트 ‘리니지W’는 대만에서는 성과를 냈지만 일본·동남아에서는 성과가 제한적이었다. BM 불일치가 글로벌 확산의 장벽으로 작용한 셈이다.
국내 MMORPG는 여전히 시장 매출 비중이 크지만 현재 모델로는 장기 지속 가능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다. 장기 성장을 위해서는 ▲과금 의존도 완화 ▲PVE 콘텐츠 다양화 ▲자유도와 창의성을 살린 설계가 필요하다.
김정태 동양대 게임학부 교수는 “유저들은 BM 외에도 전투, 콘텐츠, 스토리 라인 같은 게임 내 변화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며 “글로벌 시장에서 MMORPG 성공 사례는 많지 않지만 게임사들이 BM과 콘텐츠 변화를 예고한 만큼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천선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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