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가 3100선을 중심으로 박스권에 접어든 가운데 추가상승을 견인해 줄 기업실적 기대감이 사그라들고 있다. 주요 상장사의 올해 영업이익 전망치가 계속 하향곡선을 그리는 가운데, 대외변수 악화로 상황을 반전시킬 만한 묘수도 딱히 없다는 진단이다.
여기에 트럼프 미 행정부의 관세 정책 본격화 등 대외 불확실성 고조, 법인세 인상 등 정부의 반(反)시장 정책 등이 줄줄이 시장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실적 개선 가능성도 희박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3일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코스피 100위권 상장사 중 증권사들이 실적 전망치를 제시한 95개사의 올해 예상 영업이익은 8월 말 기준 235조8762억원(단순 합계)으로 집계됐다. 새 정부 출범 전인 5월 말 244조4963억원 대비 3.5% 줄었다. 같은 기간 코스피가 2697.67에서 3186.01로 18% 이상 급등한 것과 대조적인 흐름이다.
전망치 자체가 하향된 종목들이 많았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 전망치가 내려간 상장사는 56곳으로 전체 58.9%로 절반이 훨씬 넘었다. 상향된 상장사는 39곳(41.1%)에 그쳤다. 주요 종목 실적 전망이 암울한만큼, 협력 관계인 중견·중소 상장사의 실적 전망치도 하향됐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기업별로 보면 삼성SDI의 하향 폭이 가장 컸다. 5월 말까지만 해도 올 영업이익이 1120억원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했으나 불과 석 달 만에 1조1732억원 적자로 크게 불어났다. 석유화학 구조 재편 중인 롯데케미칼의 올해 영업이익 전망치도 2506억원 적자에서 5810억원 적자로 크게 불었다.
이밖에 SK이노베이션(적자전환), 한화솔루션(-72.8%), 에쓰오일(-41.1%), SK(-39.3%), LG생활건강(-35.4%), SK텔레콤(-34.6%), 포스코퓨처엠(-33.5%) 등도 실적 전망이 더 어두워졌다.
시총 상위 종목도 예외는 아니다. 삼성전자는 올해 예상 영업이익이 32조1373억원으로 점쳐졌지만, 8월 말 28조6438억원으로 10.9% 빠지는 걸로 나왔다. 지난해 영업이익(32조7260억원)과 비교해해 12.5% 적다. 현대차와 기아 전망치도 석 달 만에 4.7%, 8.6% 내려갔다.
영업이익 하향 기조는 관세 현실화, 경기둔화 등에 따른 결과로 분석된다. 트럼프 행정부는 7월 말 한국에 대한 상호관세율을 15%로 확정했고 철강·알루미늄(관세율 50%), 구리(50%), 자동차(25% 또는 15%) 일부 품목에 대해선 더 높은 관세율을 부과하기로 했다.
영향은 현실화됐다. 1일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8월 수출입동향’에 따르면 8월 대(對)미 수출은 87억달러로 전년동월 대비 12% 감소했다. 품목별로 자동차 –3.5%, 자동차 부품 –14.4%, 철강 –32.1% 등의 수출이 줄었다. 반도체 품목 관세 예고, 중국 공장 내 미국산 장비 반입 규제 등에 따라 간판 기업 삼성전자의 실적 악화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문제는 실적 개선이 쉽지 않을 거라는 점이다. 기업에 부담을 주는 경제 법안이 대표적이다. 정부는 7월 말 법인세 과세표준 전 구간 세율을 1%포인트씩 인상하는 내용의 ‘2025년 세제개편안’을 발표했고 이달 정기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본회의 통과 시 법인세 최고세율이 27.5%(지방소득세 포함)로 올라가 비용 부담은 전보다 더 늘어나게 된다.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도 실적에 민감하게 다가올 전망이다. 법안 자체가 실적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지만 파업 리스크 증가에 따른 생산 차질, 노동비용 상승, 투자 위축 등을 불어올 수 있기 때문이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법인세 인상과 노란봉투법 시행은 기업들의 투자를 위축시키고 비용 부담을 늘려 이익이 감소할 수밖에 없다”며 “이익 감소 시 기업들이 해외로 나가면 일자리가 줄어들면서 경제 악순환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실적 저하 움직임에 따라 하반기 주식시장도 녹록지 않을 전망이다. 박승영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컨센서스(시장 전망치)와 주가는 비슷하게 움직이고 컨센서스 높이도 중요하지만 컨센서스가 어떻게 움직이는지가 더 중요하다”며 “계절적 특성상 3·4분기에 실적이 하향되는 비율이 높아 7월 30일 기록한 코스피 3254가 올해 고점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윤승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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