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3대 강국이라고 하지만 3위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미국과 중국이 전체 시장의 90~95%를 차지하는 상황에서 우리가 나머지를 노리는 건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가 진정한 3대 강국에 걸맞은 기술과 서비스 역량을 갖춰야 합니다.”
배경훈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12일 서울 광화문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이렇게 말했다. 그는 장관 취임 전부터 한국이 미·중 AI와 직접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자체 AI를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
배 장관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2030년 성장 잠재력 3% 회복이라는 정부 목표에 AI로 기여하기 위해, 지금까지의 목표와 계획이 충분한지 논의하고 있다”며 “AI 3대 강국 도약뿐 아니라 이를 위한 기반 기술과 과학기술 발전, 그리고 국민 누구나 AI와 과학기술을 쉽게 활용해 혜택을 누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포용 성장과 균형 발전을 이끌어내는 데 앞으로 5년간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의 국내 AI 산업 진흥을 위한 첨단 그래픽처리장치(GPU) 확보 계획을 장관 취임 직후 변경했다고 밝혔다. 기존의 ‘2030년까지 GPU 5만장 확보’ 계획을 ‘2028년까지 5만장 확보’로 앞당겼다는 것이다.
배 장관은 “올해 GPU 1만3000장을 확보했고, 내년에 추가로 1만5000장을 구매할 예정”이라며 “슈퍼컴퓨터 6호기를 통해 추가 물량을 확보하면 총 3만7000장을 조기에 확보할 수 있다. 국가AI컴퓨팅센터를 통해 1만5000장을 더 확보하면 2028년까지 5만장 목표 달성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대기업을 제외한 학계, 중소·벤처기업, 스타트업까지 GPU 수요가 2030년 기준 14만~15만장에 이를 것으로 본다”며 “정부가 그중 30% 정도를 마중물로 지원한다면 AI 대전환에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만 시장이 빠르게 변하는 만큼 5만장으로는 부족할 수 있다. 내부적으로는 2030년까지 20만장 확보 방안까지 검토하며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덧붙였다.
배 장관은 또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추진 중인 다양한 AI 사업 가운데 ‘AI 특화 파운데이션 모델 프로젝트’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그가 구상하는 ‘K-AI’ 개념과 직결된다.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특화 서비스용 AI 모델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우리나라가 자체적으로 만든 범용 파운데이션 모델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소버린 AI(AI 주권)를 단순히 국내에서만 쓰이거나 한국어에 특화된 모델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지만, 저는 ‘포용적인 AI’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우리가 제어할 수 있는 AI 기술이 없다면 특화 모델 개발도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배 장관은 미국 기업들이 AI 모델을 속속 발표하고 있지만, 점차 오픈소스 대신 비공개 모델로 전환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오픈AI의 챗GPT, 앤트로픽의 클로드, 구글의 제미나이 등 주요 모델들이 투자 비용 회수를 위해 유료 플랫폼으로 전환하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 중국의 딥시크 같은 기업은 비슷한 성능의 모델을 오픈소스로 공개하고 이를 제조업 기반과 결합해 로봇 등 ‘피지컬 AI’로 확장하고 있다. 배 장관은 이런 환경에서 한국의 기술이 글로벌 사업자와 사용자로부터 선택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AI 대전환(AX)을 가볍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특화 서비스 성능을 우리가 원하는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건 결코 쉽지 않다”며 “예컨대 음성-문자 변환(STT)이나 문자-음성 변환(TTS) 기술은 10년 전부터 있었지만 아직 만족스러운 수준이 아니다. 지금도 기자들이 제 발언을 직접 받아 적고 정리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런 특화 서비스를 잘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 세계 최고 수준의 거대언어모델(LLM)을 개발하고 특정 환경 요건에 맞는 데이터셋을 학습시켜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하는 긴 과정이 필요하다”며 “AI를 잘 만들어 특정 분야에 적용하는 그 과정을 위해 K-AI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변인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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