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고숙련 외국인 근로자 비자인 H-1B 비자 신규 신청에 10만달러(약 1억4000만원)의 수수료를 부과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현행 1000달러 수준에서 100배 인상된 금액으로, 실리콘밸리를 비롯한 미국 내 기술 업계에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20일(현지시각) 로이터, 블룸버그, 파이낸셜타임즈 등에 따르면 백악관은 설명자료를 내고 "저임금 외국인 노동자로 인해 미국 근로자의 일자리가 대체되고, 국가 경제 및 안보가 위협받는 상황을 차단하기 위해 새로운 H-1B 비자 신청 시 10만달러의 추가 납부금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추가 수수료는 신규 신청자에만 적용되며, 현재 H-1B 소지자와 갱신 신청자에게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며 '일회성 납부금'”임을 강조했다. 그러나 발표 직후 기업과 비자 소지자 사이에서는 재입국 불가 우려가 확산했고, MS·구글·아마존 등 주요 기업들은 해외 체류 중인 직원들에게 조기 귀국을 권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들과의 대화에서 “이 조치로 미국에 머무는 인재가 더 생산적인 기여를 하게 될 것”이라며 기업들의 반발을 일축했다. 하워드 루트닉 상무장관도 서명식에서 '연간 수수료'라고 언급해 정책의 적용 범위와 성격을 두고 혼선이 이어졌다.
H-1B 비자는 매년 약 8만5000개가 발급되며, IT·금융·컨설팅 기업이 숙련 인력 채용에 적극 활용해 왔다. 미국 정부 자료에 따르면 아마존, 타타컨설턴시서비스(TCS), 마이크로소프트, 메타, 애플이 주요 수혜 기업이다. 약 50만명이 현재 H-1B 비자로 미국에 체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실리콘밸리는 외국인 엔지니어와 코딩 전문가에 크게 의존해 왔다. 블룸버그 보도에 따르면, 이번 발표 직후 코그니전트(-4.7%), 인포시스(-3.4%) 등 IT 컨설팅 기업 주가는 급락했다. 일부 비자 소지자는 이미 해외 출장을 취소하거나 귀국 계획을 연기하고 있으며, 이민 변호사들은 "법원에서 즉시 이의 제기와 가처분 신청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H-1B 비자는 트럼프 행정부 내에서도 논란이 큰 제도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는 “내가 미국에 있는 이유도 H-1B 덕분”이라며 제도를 옹호해 왔으며, 트럼프의 부인 멜라니아 여사 역시 H-1B 비자로 미국에 입국한 바 있다. 반면 극우 성향 인사들은 오랫동안 이 제도의 축소를 요구해 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1기 집권 당시에도 H-1B 발급을 일시 중단한 전력이 있다. 이번 조치가 법원 제동이나 업계 반발로 수정될지, 아니면 본격적인 '합법 이민 축소' 전략의 신호탄이 될지 여러 기술 기업들은 주목하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익명을 요구한 한 구글 직원은 백악관 발표로 인해 가족을 방문하기 위해 도쿄로 가는 여행을 취소했다고 전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직원들에게 "이러한 사태 전개가 많은 분들께 불확실성을 야기하고고 있음을 이해한다"며 "우리도 확실히 다 알지 못한다. 하지만 현재로선 미국에 머무르는 게 가장 안전하다"는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선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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