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의 핵심 전장은 단연 '인공지능(AI)'이다. 그리고 이 AI 전쟁의 승패는 알고리즘의 우수성뿐만 아니라, 그 알고리즘을 구동하는 '실리콘', 즉 반도체에 의해 좌우되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AI 모델이 기하급수적으로 고도화되면서 '더 많은 데이터'가 아닌 '더 많은 연산 능력(Compute)'이 성장의 한계를 결정하는 '컴퓨팅의 벽(Compute Wall)'에 부딪히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최근 부상한 오픈AI, 삼성전자, 그리고 SK하이닉스 간의 잠재적 협력 구상은 단순한 기업 간의 파트너십을 넘어, AI 산업의 밸류체인을 근본적으로 재편하고 실리콘 지정학의 판도를 바꾸려는 거대한 구조적 움직임으로 해석해야 한다. 이는 세계 최고의 AI 소프트웨어(두뇌), 세계 최고의 메모리 반도체(HBM), 그리고 세계 최고 수준의 파운드리(신경망)가 결합하는 '꿈의 연합'이다. 우리는 이 동맹이 단순한 부품 거래를 넘어, AI의 미래를 공동으로 설계하는 '운명 공동체'로 나아갈 수 있을지, 그 전략적 함의를 깊이 있게 분석해야 한다.

이 거대한 변화의 중심에는 AGI(일반인공지능)를 향한 오픈AI의 절박한 열망이 자리 잡고 있다. 챗GPT의 아버지, 샘 올트먼 오픈AI CEO가 전 세계를 돌며 수천조원 규모의 펀딩을 도모한 이유는 명확하다. 바로 현재의 AI 하드웨어 공급망, 특히 엔비디아 중심의 그래픽처리장치(GPU) 독점 구조로는 최종 목표에 도달할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현재의 AI 발전 속도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컴퓨팅 파워는 3~4개월마다 두 배씩 증가하고 있으며 이는 무어의 법칙을 아득히 초월하는 속도다. 범용으로 설계된 현재의 GPU는 AI 모델 아키텍처에 100% 최적화되어 있지 않아 전력 효율, 추론 비용, 데이터 처리 병목 현상 등에서 비효율을 낳는다. 이 때문에 오픈AI는 자신들의 GPT 모델과 향후 개발될 AGI 아키텍처에 완벽하게 맞춤 설계된, 즉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가 함께 디자인되는 'AI 네이티브' 가속기를 갈망하고 있다.

구글의 텐서처리장치(TPU), 마이크로소프트의 마이아(Maia)가 그 시작이며, 오픈AI는 이들보다 더 나아간 완전한 수직 통합을 꿈꾼다. 단순히 칩을 구매하는 '고객'에서 벗어나 칩의 설계부터 생산, 메모리 결합까지 전 과정에 깊숙이 관여하는 '설계자'로의 진화는 천문학적인 비용을 절감하고 엔비디아에 대한 의존에서 벗어나 '실리콘 주권'을 확보하기 위한 필연적인 전략이다.

오픈AI의 이러한 '실리콘 주권' 확보 야망을 현실로 만들어 줄 최적의 파트너로 대한민국 반도체 기업들이 급부상하는 것은 필연적이다. 메모리 시장에서 수십 년간 치열하게 경쟁해 온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AI라는 거대한 공동의 목표 아래 '팀 코리아'로 연합하는 그림이 그려지기 때문이다.

AI 연산의 가장 큰 병목인 데이터 공급 역할을 하는 '혈관', 즉 HBM(고대역폭 메모리) 시장에서 SK하이닉스는 독보적인 기술력으로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오픈AI의 맞춤형 칩 역시 SK하이닉스의 최첨단 HBM 없이는 제 성능을 발휘할 수 없다.

여기에 삼성전자는 이번 동맹 구상에서 '게임 체인저'의 역할을 맡는다. 삼성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최첨단 파운드리(로직 반도체 생산) ▲HBM(메모리) ▲첨단 패키징 기술을 모두 최고 수준으로 보유한 기업이기 때문이다. 이는 오픈AI에게 '원스톱 턴키(Turnkey)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오픈AI가 설계한 AI 가속기를 삼성의 3나노 이하 최첨단 공정으로 생산하고, 그 옆에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의 HBM을 결합하는 첨단 패키징까지 일괄 제공하는 시나리오는 현재의 복잡하고 분절된 공급망 구조보다 훨씬 효율적이며 성능 최적화에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이처럼 AI 소프트웨어, 로직, 메모리 최강자들이 손을 잡는 '삼각동맹'이 현실화될 때, 그 파장은 현재의 AI 반도체 시장을 지배하는 '엔비디아-TSMC' 축을 정면으로 겨냥하며 산업 지형의 근본적인 재편을 예고한다.

오픈AI라는 최대 수요처가 자신만의 '맞춤형 칩'으로 무장하고 엔비디아의 GPU 의존도를 낮추기 시작하면, 엔비디아의 독점적 지위는 흔들릴 수 있다. 이는 다른 대형 AI 기업들의 자체 칩 개발을 더욱 가속하는 기폭제가 되어, AI 칩 시장을 본격적인 춘추전국시대로 이끌 것이다. 동시에 파운드리 시장에서는 TSMC 독주 체제에 가장 강력한 제동이 걸린다.

삼성전자가 오픈AI라는 상징적인 거대 고객을 확보한다면, 이는 삼성 파운드리의 기술력과 신뢰도를 전 세계에 입증하는 최고의 쇼케이스가 될 것이다. 애플과 엔비디아를 등에 업은 TSMC와 본격적인 '승부'를 벌일 발판을 마련하게 되는 셈이다. 나아가 이번 동맹은 미중 기술 패권 경쟁이라는 더 큰 지정학적 틀 안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AI 반도체 생산기지가 대만에 과도하게 집중된 것에 부담을 느끼는 미국 입장에서, 핵심 동맹국인 한국을 중심으로 새로운 공급망이 구축되는 것은 '반도체 공급망 다변화' 전략과 완벽하게 부합하며 한미 기술 동맹을 한 단계 격상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오픈AI, 삼성전자, SK하이닉스의 연합은 단순한 부품 공급 계약이 아니다. 이는 AI 소프트웨어 개발사, 로직 반도체 제조사, 메모리 반도체 제조사가 기획 단계부터 하나의 목표를 위해 모든 것을 최적화하는 'Co-Design(공동 설계)' 패러다임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소프트웨어 아키텍처가 하드웨어 설계를 결정하고, 다시 하드웨어의 가능성이 소프트웨어의 진화를 이끄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물론 이 거대한 프로젝트 앞에는 세 기업의 복잡한 이해관계 조율, 천문학적인 투자 비용, 신규 칩 개발에 따르는 기술적 리스크 등 수많은 난관이 존재한다. 하지만 방향성은 명확하다. AI 네이티브 시대는 AI에 최적화된 'AI 네이티브 실리콘'을 요구한다. 이 거대한 흐름 속에서 탄생하는 '한미 AI 기술 동맹'은 향후 10년의 글로벌 AI 패권을 결정지을 가장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다. 이들의 협력이 현실이 되는 순간, AI 산업의 지도는 완전히 새롭게 그려지기 시작할 것이다. AGI를 향한 인류의 위대한 도전은 이제 실리콘 위에서 가장 뜨거운 혁명을 시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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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빈 트러스트 커넥터 대표는 서강대 AI·SW 대학원 특임교수로 투이컨설팅 자문과 한국 경영학회 디지털 경영 공동위원장, 법무 법인 DLG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 오라클과 한국 IBM 등 IT 업계 경력과 더불어 서강대 지능형 블록체인 연구센터 산학협력 교수로도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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