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부터 8년 동안 총사업비 357억원이 투입된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의 국산 가상현실(VR) 엔진 및 저작도구 개발사업에서 기존 민간 기술을 신기술로 둔갑시킨 ‘택갈이’ 정황이 드러났다. 그러나 사업을 관리·감독·평가한 정보통신기획평가원(IITP)은 이를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오히려 사업을 ‘성공’으로 평가해 관리 부실이 드러났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최수진 의원(국민의힘)은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 종합감사 자료와 IITP의 최종평가위원회 종합의견서를 통해 이 같은 사실을 확인했다고 24일 밝혔다.
NST 감사 결과, ETRI는 VR 콘텐츠 제작 도구 국산화 사업에서 기존 도구를 새로 개발한 것처럼 속여 성과물로 제출했다. 또 외산 VR을 사용한 기업이 뇌물을 제공해 추가 과제를 수주한 사실도 드러났다.
해당 사업은 IITP가 관리규정에 따라 기획과 평가를 담당했지만, 사업비 정산과 최종 평가 과정에서 부당행위를 전혀 적발하지 못했다. 두 차례의 최종 평가에서도 기술계획 대비 실적을 ‘보통(성공)’으로 판정했다.
IITP는 “규정상 특이사항이 없어 부당행위를 인지할 수 없었다”고 해명했으나, 평가 항목에 목표 달성도·기술성·경제성·사업성이 포함돼 있어 관리 부실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라는 지적이다.
최수진 의원실이 IITP의 평가자료를 분석한 결과, 평가단은 평균 80점이 넘는 높은 점수를 주며 “목표를 달성했고 사업화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이번 감사의 핵심은 VR엔진 개발 과정의 ‘택갈이’와 국산 사업에 외산 VR을 활용한 불법 수주로, 종합심의위원회 자료에는 ‘실시간 분산처리 엔진’을 핵심 기술로 내세우며 “국내·외 최고 수준”이라고 자화자찬한 내용까지 포함돼 있었다.
ETRI는 7월 17일 NST에 감사 재심의를 신청했다. IITP는 회신을 받는 대로 ‘연구윤리·보안 심의위원회’를 구성해 결과가 연구 부정으로 확정되면 국가연구개발혁신법에 따라 환수 등 제재 절차를 진행할 계획이다.
최수진 의원은 “357억원의 정부 예산과 민간부담금이 투입된 사업에서 부당행위도 심각하지만, IITP가 제 역할을 했다면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일”이라며 “담당자 징계와 평가 절차 전반에 대한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광연 기자
fun3503@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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