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이번주부터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와 연말 인사·사업 재편을 동시에 챙기며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APEC을 계기로 글로벌 네트워크를 강화하고 그룹 내부적으로는 인공지능(AI) 중심의 리밸런싱(사업 재편)에 속도를 내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APEC 막바지 준비…“보호무역주의 시대 해법 찾는 자리”
28일 재계에 따르면 최태원 SK그룹 회장 겸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이날부터 31일까지 열리는 APEC CEO 서밋 준비위원장 자격으로 막바지 점검에 한창이다.
최 회장은 지난해 10월부터 약 1년간 APEC 서밋 준비를 주도하며 글로벌 주요 기업인 초청에 공을 들여왔다. 올해 2월에는 대한상의 주도로 방미 경제사절단을 꾸려 워싱턴 D.C.에서 ‘대미 통상 민간 아웃리치’ 활동을 벌이며 APEC 회의 참석을 요청하기도 했다.
이번 CEO 서밋에 참석할 것으로 알려진 젠슨 황 엔비디아 CEO, 샘 올트먼 오픈AI CEO, 팀 쿡 애플 CEO, 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 등 글로벌 IT 리더들은 모두 최 회장의 노력의 결실이라는 평가다.
재계는 최 회장이 이들과 교류하며 SK그룹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고 반도체·AI 생태계 협력의 발판을 마련할 것으로 보고 있다. 또 엔비디아와의 HBM4 협력과 AI 반도체 생태계 연계 논의 가능성에 주목한다. SK하이닉스는 현재 HBM4 양산 준비를 마치고 엔비디아와 물량 협상을 진행 중이다.
AI 중심 리밸런싱 속도…10월말 인사·조직개편 추진
최태원 회장은 APEC을 통한 글로벌 네트워크 강화와 함께 그룹 내부 혁신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그는 올해 AI를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낙점하고, 연초 신년사부터 AI 중심의 사업 재편 필요성을 강조해왔다. 최 회장은 올해 8월 서울 서린사옥에서 열린 이천포럼 2025에서 “AI와 디지털 전환(DT) 기술을 속도감 있게 내재화해 차별화된 경쟁력을 만들어야 한다”며 “구성원 개개인이 AI를 친숙하게 다뤄야 혁신과 성과를 이룰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AI 시대의 근본적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일상적인 오퍼레이션을 충분히 이해하고 강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철학은 그룹 경영에도 반영되고 있다. SK그룹은 지난해부터 최 회장의 주도 아래 AI 중심의 리밸런싱을 추진하고 있다. 올해 SK쉴더스(3조원 규모)를 시작으로 SK렌터카, SK스페셜티, SK엔펄스, SK E&S LNG 발전소 등을 매각했다.
현재 추진 중인 비상장 계열사 SK실트론 매각이 완료되면 일정 부분 유동성이 확보될 전망이다. 확보된 자금은 반도체, AI, 친환경 에너지 등 미래 성장 사업에 재투자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주력 계열사들의 실적 부진은 여전히 부담이다. 반도체를 제외하면 SK이노베이션, SK E&S, SK온, SK텔레콤 등 주요 사업의 수익성이 둔화됐다. 특히 리밸런싱 전략의 핵심 축인 배터리 계열사 SK온은 수년째 적자를 이어오며 재무 안정성 확보가 시급한 과제로 부상했다.
이처럼 실적 악화와 리밸런싱 추진 속도 간의 균형이 요구되면서 연말 정기 인사에 재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최 회장이 실적 부진을 반전시키기 위해 어떤 인사를 단행하고, AI 중심 경영에 부합하는 리더십을 어떤 인물에게 맡길지가 향후 그룹 전략의 방향을 가를 전망이다.
SK그룹은 이르면 10월 말 계열사 CEO 인사와 조직 개편을 단행할 계획이다. 최 회장은 리밸런싱 성과와 미래 비전 실행력을 중심으로 인사 전권을 행사할 것으로 관측된다.
최 회장은 인사 이후에도 분주한 행보를 이어갈 전망이다. 그는 11월 3~4일 그룹 차원의 ‘SK AI 서밋’을 직접 주재해 AI 기술 내재화와 조직 효율화 방안을 논의한다. 기조연설에서는 ‘오늘의 혁신 실행(AI Now)’과 ‘내일의 도약 준비(AI Next)’를 주제로 향후 전략 방향을 제시한다. 이어 11월 6~8일에는 ‘CEO 세미나’를 열고 사업 구조 재편 현황을 점검할 예정이다.
재계 관계자는 “최태원 회장이 APEC을 계기로 글로벌 리더들과의 접점을 넓히면서 동시에 그룹 내부 체질 개선까지 직접 챙기고 있다”며 “AI 중심의 사업 재편은 단순한 구조조정이 아니라 SK그룹의 산업 지형을 새로 짜는 과정으로, 향후 2~3년간 그 성패가 그룹의 성장 방향을 결정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선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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