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035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를 확정했다. 이에 자동차 업계는 정부의 목표가 현실과 동떨어져 있으며, 급격한 전기차 전환이 산업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일각에서는 감축 목표 달성에만 초점이 맞춰질 경우 중국산 전기차의 국내 시장 잠식이 가속화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는 11일 ‘2035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를 확정하고, 2018년 대비 2035년 온실가스 배출량을 53~61%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앞으로 10년간 약 4억톤(t)의 온실가스를 감축하기 위한 대대적인 전환이 추진된다.
특히 수송 부문에서는 전기차·수소차 보급을 2024년 목표치(누적 103만대)보다 72.8%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자동차 업계는 “현실성이 부족하다”며 “사실상 내연기관차 조기 퇴출 선언과 다름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카이즈유데이터연구소 발표 자료를 살펴보면 올해 1~10월 국내 신차 등록 대수는 총 139만9145대로, 이 중 전기차는 19만522대(13.6%)에 불과하다. 단순 계산으로 70% 달성을 위해서는 98만대의 전기·수소차가 판매돼야 한다. 이는 같은 기간 가솔린(62만6562대)과 하이브리드(37만2416대)를 합친 규모다. 결국 2035년에는 전기차·수소차가 가솔린·하이브리드를 완전히 대체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완성차 업계는 전기차 보급 속도, 충전 인프라, 보조금 예산 등을 감안할 때 2035년 전기차·수소차 비중은 20% 안팎이 현실적이라고 본다. 또 보급률만을 앞세운 정책 추진은 중국산 저가 전기차의 대량 유입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중국 전기차 업체들의 과잉 공급도 문제로 꼽힌다. 현재 중국 내 130여개 전기차 제조사 가운데 흑자를 내는 곳은 4곳뿐이다. 내수 시장에서의 과잉 경쟁과 가격 인하로 수익성이 악화된 가운데, 한국 정부의 전기차 확대 정책이 중국 업체들의 재고 해소와 수익 보완 수단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다.
업계 관계자는 “한국 시장이 중국 전기차의 출구로 전락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중국 전기차의 국내 점유율은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 올해 1월 한국 시장에 본격 진출한 BYD는 10개월 만에 수입차 시장 6위로 올라섰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 통계 자료를 살펴보면 BYD는 10월 한 달간 824대를 판매해 아우디(689대)를 제쳤다.
중국 전기차 브랜드 지커(Zeekr)는 국내 판매 개시를 앞두고 있으며, 샤오펑(Xpeng)도 한국 법인 설립을 마치고 진출을 준비 중이다.
비슷한 전례는 과거에도 있었다. 문재인 정부 시절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해 태양광 보급을 급격히 확대했으나, 이 과정에서 값싼 중국산 모듈과 인버터가 대거 사용됐다. 그 결과 국내 태양광 기업의 내수 매출은 지속 감소했다. 한국에너지공단 자료를 살펴보면 국내 태양광 기업의 내수 매출은 2019년 2조3197억원에서 2023년 1조8690억원으로 줄었다. 지난 2024년에는 1조5000억원 이하로 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반면 같은 기간 태양광 발전 보급량은 2.5배 늘었다. 산업 성장 대신 중국산 제품이 시장을 잠식한 셈이다.
완성차 업계는 정부의 정책 속도 조절과 산업 보호 장치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자동차모빌리티산업연합회(KAIA)는 11일 입장문을 내고 “급격한 전환에 따른 문제점이 해소되지 않은 채 목표가 확정됐다”며 “산업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는 유연한 정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또 “수송 부문의 감축 목표는 유지하되, 무공해차 비중은 시장 상황에 맞게 조정하고 교통·물류 부문에서의 감축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KAIA는 또한 수송 부문 내 감축 수단의 다양화를 주문했다. 하이브리드차와 탄소중립 연료 등 여러 파워트레인을 병행해 감축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전기·수소차 보조금 확대, 충전 요금 할인 특례 연장, 고속도로 통행료 50% 할인 유지 등 실질적인 소비자 유인책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반면 일부에서는 정부의 목표가 글로벌 흐름에 부합하는 조치라는 평가도 나온다.
임기상 미래차타기 자동차시민연합 대표는 “정부의 결정은 2035년을 기점으로 내연기관 신차 판매를 대폭 축소하고 완전한 전동화로 전환하겠다는 강력한 신호로 해석된다”며 “이에 따라 자동차 제조사뿐 아니라 부품 업계 전반의 신속한 사업 재편과 기술 개발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그는 “보조금에 의존한 보급 확대가 아니라, 기술 고도화를 통해 보급형 전기차를 개발하는 방향으로 전략이 병행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허인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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