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기술을 따라가선 안 됩니다. 사람들이 AI를 배우는 게 아니라 AI가 사람에게 맞춰 발전해야 합니다. 이건 제가 전공한 ‘인간-컴퓨터 상호작용(HCI)’의 기본 철학이에요.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쓰이지 않으면 무용지물입니다. 사회분과는 사람이 AI를 공부해서 사용하는 게 아니라, 기술이 사람에게 맞춰지고 더 적합하게 활용될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 사회분과장을 맡고 있는 유재연 한양대학교 글로벌사회혁신단 교수는 IT조선과 만나 이렇게 말했다. 그는 “사회분과의 담당 범위가 넓고 철학적이라 설명이 쉽지 않다”고 전제했지만, 그의 말에는 사회분과가 다루는 AI 관련 철학과 논의가 녹아 있었다. AI가 단순히 작업 공정을 자동화하던 단계를 지나 산업 구조와 사회 변화를 주도하는 시대가 됐기 때문이다.
AI 기술이 발전하면서 일자리를 잃거나 위협을 느끼는 이들이 나타났다. 딥페이크·보이스피싱 등으로 사회적·경제적·정신적 피해를 입는 사례도 늘고 있다. 반면 AI를 빠르게 익혀 수익을 내는 사람도 있고, 키오스크 사용조차 어려워하는 디지털 취약계층도 존재한다. 사회분과는 이처럼 다양한 계층이 공존하는 상황에서 모두를 포용하는 AI 기본사회 정책을 구상한다.
인간 중심의 AI 사회
유재연 분과장은 사회분과가 ‘AI 기본사회’와 ‘모두의 AI’ 두 가지 주제를 중심으로 논의한다고 설명했다. ‘AI 기본사회’는 AI가 사회를 바꾸는 과정에서 과거의 실수, 즉 기술과 부의 양극화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모두의 AI’는 더 많은 이가 AI를 편하게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챗GPT 같은 대화형 AI를 모두가 쓰게 하자는 뜻이 아니라, AI 접근성을 높이자는 취지다.
그는 “지금의 채팅 기반 UX는 사용자가 질문해야 하는 적극적 형태지만, AI가 더 발전하면 사용자의 수요를 스스로 파악해 필요한 걸 제안하고 결과를 도출하는 중간 과정을 대신하게 될 것”이라며 “결국 인간이 결정을 책임지는 능력이 더 중요해지는 사회가 온다”고 말했다.
사회분과는 학계·법조계·산업계·시민단체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로 구성돼 있다. 미디어 커뮤니케이션, AI 윤리, 사회경제, K-컬처 등 각자 다른 전문 분야를 갖고 있다.
유 분과장은 “회의를 하면 2시간이 훌쩍 넘는다”며 “논의는 주로 고용과 생애, AI 오남용 문제, 복지와 기본의료 등 세 축으로 이뤄진다”고 전했다.
AI 부작용과 윤리 논의
사회분과의 주요 의제는 AI의 부작용을 예방하고 해소하는 것이다. AI 발전으로 인한 사회 문제는 이미 국가 정책 과제가 됐다. 영국을 비롯해 한국과 미국 등 여러 나라가 인공지능안전연구소를 설립해 관련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AI가 발전하면서 저연차 개발자와 일러스트레이터의 일자리가 줄고 있다. 올해 초 챗GPT에 ‘지브리풍으로 그려줘’ 열풍이 불었을 때, 많은 창작자가 “인생을 도둑맞았다”고 토로했다. 수년간 쌓아온 화풍을 AI가 한 번의 클릭으로 모방했기 때문이다. 딥페이크 성착취물이나 마약·자해를 부추기는 AI 챗봇 문제 등도 현실화했다.
유재연 분과장은 “AI가 인간의 생명을 위협하는 행위를 해선 안 된다는 원칙을 세우고 이에 대한 조치를 마련 중”이라며 “AI 기본법 가이드라인이 잇따라 나오고 있지만, 규제만 늘어나는 걸 막기 위해 법의 사각지대부터 점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윤리 규범은 이미 글로벌 표준과 국내 기업의 자체 기준이 존재한다”며 “이를 공공 영역의 인공지능 전환(AX)에 어떻게 적용할지, 그리고 더 나은 AI 서비스가 나오도록 어떤 방향으로 유도할지 논의 중”이라고 설명했다.
국가 단위 시뮬레이션 필요성
유재연 분과장은 “미래 논의가 여전히 ‘재교육’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림책을 그리던 사람이 일자리를 잃었다고 갑자기 코딩을 배우는 건 비효율적”이라며 “어떤 산업에 어떤 인력을 어떻게 배분할지 국가 단위 시뮬레이션을 통해 과학적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이 AI 사회 모델을 연구하기 좋은 환경이라고 평가했다. “한국은 초고령화 속도가 빠르면서도 AI 인프라가 잘 갖춰진 나라”라며 “정부가 보유한 국민 데이터를 활용하면 세계적 경쟁력을 지닌 AI 사회 모델을 만들 수 있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정보화 시대, 산업화 시대처럼 일부 대기업만 이익을 얻는 양극화를 반복해선 안 된다”며 “AI를 인간에게 이롭게 쓰는 ‘사람 중심 AI’를 국가 모델로 연구하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AI가 단지 생산성 향상이 아니라 국민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하도록 만드는 방법을 찾는 게 목표입니다. AI 발전 속도가 너무 빠르지만 여전히 흥미로운 도전이 많습니다.”
변인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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