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딜레마

윤재영 지음 | 김영사 | 280쪽 | 1만7800원

“그동안 귀여운 캐릭터가 나오는 게임을 딸아이가 하고 있으면, 예전 우리 세대가 ‘인형’을 갖고 놀던 때를 떠올리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인형과 역할놀이를 하며 끝없는 상상의 나래를 펼쳤던 그때 말이다. 적어도 그때의 인형은 우리에게 뭔가를 교묘하게 요구하거나 우리를 현혹하진 않았다.”

전작 ‘디자인 트랩’으로 일상과 경험 속에 숨겨진 ‘기만패턴 디자인’의 문제를 한국사회에 소개한 윤재영 교수가 새책 ‘디자인 딜레마’를 내놨다. 

이제 우리는 말하지 않아도 필요한 콘텐츠를 추천받을 수 있고, 인공지능(AI) 비서를 쓰는 시대가 되었지만, 그 효과만큼이나 사용자의 경험을 불쾌하게 만들고 윤리적인 문제를 유발시키는 ‘선을 넘는 디자인’도 늘어나고 있다. 

어떤 디자인이 윤리적으로 올바른가?

모든 공간에서 사용자의 경험을 디자인하는 UX디자인이 각광받고 중요성이 커지고 있지만, 어떤 디자인이 윤리적으로 올바른가 하는 문제는 매우 어려운 질문이다. 이제 막 태동하는 분야인만큼 명확한 기준이 정립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디자인 딜레마’는 맞춤형 추천 서비스에서 가상현실VR 체험, AI 비서와 챗봇 서비스에 이르기까지 일상을 편리하고 즐겁게 해주는 콘텐츠와 서비스에 숨어 있는 다양한 부작용과 윤리적 문제들을 살펴본다. 

지극한 행복을 느끼는 지점이란 뜻의 지복점이란 용어가 있다. 예를 들어 소비자가 음식을 입안에 넣고 지복점에 도달하게 되면 행복감을 유지하기 위해 먹고 또 먹게 된다. 

저자는 식품업계가 맛의 지복점을 찾기 위해 사활을 거는 것처럼, 극강의 보상과 쾌락을 주는 지복점 매커니즘은 온라인 세상에서도 우리를 중독시킨다고 풀이한다. 숏폼 영상을 제공하는 SNS가 대표적이다. 이들 플랫폼 서비스는 사용자 개개인의 지복점이 무엇인지 찾아내서 관련 콘텐츠를 무한으로 제공한다. 잠깐만 봐야지 하고 보기 시작했다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오래 보게 된다는 얘기다. 

이와 같은 달콤함과 중독의 딜레마는 나쁜 것인가. 어쩔 수 없는 것인가. 

저자는 “그동안 온라인 서비스 등에 중독되어 고통받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 사회는 주로 ‘사용자의 의지력 부족’을 지적하는 분위기였다”며 “그러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서비스를 제작하는 기업, 서비스를 사용하는 사용자, 정책을 시행하는 정부 등 모두의 고민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하나의 딜레마 주제를 놓고도 동종 업계의 비슷한 연차, 나이, 성별을 가진 디자이너들조차 생각이 다양할 것이다. 저자는 옳고 그름에 대한 논의와 기준이 부족한 현시대에 디자인에만 국한되지 않고, 서비스를 설계하는 모든 사람이 가질 수 있는 딜레마에 대해 고민해 보기를 바란다고 전한다.

이윤정 기자 ityoon@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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