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국정감사에서는 기준금리 인하를 둘러싸고 갑론을박이 펼쳐졌다. 민간소비 회복과 경기 부양 등의 효과를 두고 ‘실기론’ 지적이 나왔지만 일부 의원들은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며 의견이 갈렸다. 여기에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에 따른 실기라는 비판도 나왔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기재위)는 14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국정감사를 실시했다. 지난 11일 한은이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하를 결정한 뒤 열리는 국감 인만큼 통화정책에 대한 질문이 쏟아졌다. 이번 기준금리 인하는 지난 2021년 8월 이후 38개월 만에 이뤄졌다.
이창용, “가계부채 등 금융안정 고려… 1년 뒤 평가해달라”
기준금리 인하를 두고 의원들 사이에서 평가가 갈렸다. 김영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기준금리 인하가 너무 늦었다”고 말했고, 같은 당 김영환 의원 역시 “최근 우리 경기 부진에 따른 금리 인하 조치가 이제야 들어온 탓에 내수경기, 소비 관련 부분은 물론 자영업자 등 취약 영역의 부분에 큰 문제들이 지금 발생하고 있다”고 했다.
안도걸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정책 효과 면에서는 실패작”이라면서 “후행적 인하를 했기 때문에 시장의 자극 효과가 전혀 없었고 금리 인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사전 여건 조성에 실패했다”고 말했다. 이어 “기준금리 인하 그에 따른 내수 부양 효과는 기대하기가 어렵다”고 덧붙였다.
이에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부동산 가격이 빨리 오르고 가계부채 증가 속도도 너무 빨라 이를 감안했어야 했다”며 “사실 7월부터 기준금리 인하를 고민하고 있었지만 시장에 잘못된 시그널(신호)을 주지 않기 위해 쉬었다가 내린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8월에는 가계부채가 너무 빨리 올라가나 봐서 금융안정이 더 중요하다는 판단에 금리를 못 내렸고 9월에는 정부의 거시건전성 정책 강화를 고려했다”며 “이달 기준금리 인하는 금융안정 고려나 이런 걸 보기 때문에 저희들이 스몰커스 조금 0.25%포인트 낮추고 금융안정에 주는 영향을 본 다음 움직인 것이 좋다는 판단”이라고 설명했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통화정책의 발목을 잡은 것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안도걸 의원은 기준금리 인하에도 오히려 시장금리가 오르는 괴리 현상을 언급하며 “정부의 인위적인 주택 부양 정책이 원인”이라고 했다.
통화정책에 긍정적인 평가를 내린 황명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저는 개인적으로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며 “금리를 인하함에 따라 대출 규모 자체가 증가할 위험이 일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보다 더 심각한 상황인 대출 연체율 상승을 완화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이 총재는 “자영업자가 어렵고 경제가 어려운 부분이 있다”며 “그런 부분을 해결하기 위해 금리를 빨리 낮춰야 하는 한편 저희는 조율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저희 금리 인하(를 두고) 실기했다고 보시는 면도 있고 적절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며 “1년쯤 지난 다음에 평가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창용 총재 “부동산 대출 쏠림 정책으로 해결해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갭투자 등 부동산 분야에 대출이 쏠리는 문제를 정책적으로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고 밝혔다.
차규근 조국혁신당 국회의원이 ‘고소득층이 실거주 목적이 아닌 금융대출로 부동산 투기를 하고 있는 것’이라면서 스트레스 DSR 2단계 도입 연기가 미친 영향에 대한 한국은행의 입장과 대안을 묻자 “스트레스 DSR 연기가 부동산 가격에 영향을 얼마나 줬는지 모르겠지만 그 책임에 대해 저도 자유롭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미국 금리가 떨어지면서 금리가 인하할 거라는 기대가 커졌기 때문에 9월을 넘어서면 대출이 어려우니까 당겨 대출을 받자는 심리가 있었을 것”이라며 “부동산 가격이 올라가는 것을 보자마자 정부가 굉장히 강력한 미시적 정책을 실시했기 때문에 조절을 구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정책이 자리잡혀서 내년에 안정이 이뤄지면 적절히 대응한 것으로 평가를 받을 것이고, 계속 (갭투자 등이) 증가한다면 질책을 더 받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국내 은행의 밸런스를 보면 7~80%가 부동산 관련 기업대출로 결국 한국 모든 국민이 부동산에 투자하고 있는 것인데 이는 제가 보기에 집중 위험이 있다”면서 “장기적으로 반드시 변해 나가야 할 정책 과제”라고 강조했다.
물가 안정세 이어가겠지만 구조적 대응 필요
한은은 통화 긴축 효과로 물가상승률이 뚜렷한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 총재는 “낮은 수요압력을 고려할 때 앞으로도 물가상승률은 안정된 흐름을 지속할 것으로 예상한다”며 “다만 중동지역 리스크, 국제유가 변동과 관련한 불확실성은 높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목표(2%)를 달성했지만, 여전히 높은 물가로 국민이 소비 제약 등 불편을 겪고 있다’는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질문에 “지금 국민이 느끼는 고통은 인플레이션, 물가 상승률이 아니라 물가 수준 자체가 높기 때문”이라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식품·주거 등의 물가를 구조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우리가 보고서를 통해 현재 수입하지 않는 농산물을 중심으로 수입 품목을 다양화하고 교육 제도를 통해 주거 비용을 낮출 필요가 있다고 얘기한 것도 마찬가지”라며 “물가 수준을 낮춰야 한은의 신뢰성도 커지는데 지금 물가 상승률로는 해결할 수 없고 구조 조정 방안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한재희 기자 onej@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