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3년 넘게 이어오던 긴축을 끝냈다.

‘인플레이션 파이터’로서 물가 잡기를 최우선 목표로 삼던 것에서 경기 부양과 금융안정을 동시에 살피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일단 이자 부담이 줄면서 내수 회복에 긍정적인 효과를 발휘할 것이란 평가다. 한은은 추가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을 열어두면서도 가계부채 증가와 집값 상승 등 금융안정을 살피겠다며 ‘매파적 인하’를 강조했다. 

한국은행은 11일 오전 금융통화위원회를 열고 기준금리를 현 수준인 3.50%에서 0.25%포인트 내린 3.25%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 2021년 8월 기준금리 인상을 시작한 이후 3년 2개월 만의 인하 결정이다. 지난해 1월 이후 한은은 13차례 연속 기준금리를 동결하며 긴축 기조를 이어왔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11일 오전 통화정책방향 결정 금통위를 열고 기준금리 인하를 결정했다./한국은행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11일 오전 통화정책방향 결정 금통위를 열고 기준금리 인하를 결정했다./한국은행

 

‘매파적 인하’… 물가 안정 확신하지만 금융안정은 불확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낮아지면서 금리 인하를 통해 긴축 정도를 완화할 필요가 커졌다”면서 “경제성장률 자체도 잠재성장률에 비해서 크게 높지 않은 수준이기 때문에 불필요하게 기준금리를 너무 오랫동안 긴축적인 수준으로 갈 이유는 없다”고 기준금리 인하 배경을 설명했다.

최근 물가는 1%대로 내려앉으며 안정된 모습이다.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6%를 기록해 지난 2021년 2월(1.4%)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지난해 10월 국제유가 및 농수산물의 가격이 급등했던 것을 감안하면 이달 물가 상승률은 기저효과로 1.6% 보다 더 떨어질 가능성도 있다. 

한국은행은 물가 안정의 기반이 다져지고 있다고 평가하면서 연말까지 2% 내외 수준에서 등락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번 인하 결정에 영향을 미친 다른 요인은 경기 부진이다. 지난 2분기 우리나라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1분기보다 0.2% 역성장했다. 이는 2022년 4분기 이후 최저치로 2023년 1분기부터 이어진 성장 기조는 다섯 분기 만에 깨졌다. 

이 총재는 “성장 측면에선 전망의 불확실성이 증대됐다”면서 “여기에 금융안정 측면에서는 가계부채 증가세 등에 여전히 유의해야 하는 상황으로 주택 거래량이라든지 주택가격 상승률에 대한 기대심리에 어떤 경향을 줄지 이런 것들을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

그는 “내수와 수출, 금융안정 사이의 상충관계가 과거 정책기조 전환기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고민스러운 정책 여건”이라면서 “정책 변수간 상충관계를 면밀히 점검하면서 신중한 결정을 할 것”이라고 부연했다.

이를 두고 ‘매파적 인하’라는 평가에 이 총재 역시 “그렇게 해석할 수 있다”고 동의했다. 물가 안정과 내수 부진 등 기준금리 인하 명분은 충분하지만 가계부채 증가와 집값 상승 등 금융안정 측면에서 불확실이 큰 만큼 소폭 인하 뒤 추이를 지켜보겠다는 것이다. 

한국경제인협회는 11일 보고서를 통해 기준금리 0.25%포인트 인하시 가계와 기업의 이자 부담이 각각 2조5천억원, 3조5천억원 줄어들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경제인협회
한국경제인협회는 11일 보고서를 통해 기준금리 0.25%포인트 인하시 가계와 기업의 이자 부담이 각각 2조5천억원, 3조5천억원 줄어들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경제인협회

가계‧기업 이자 부담 경감… 취약차주도 숨통

이번 금리 인하로 가계와 기업 모두 이자 부담이 완화될 것으로 보인다. 기준금리가 내리면 시장금리도 하락하고 금융기관의 자금 조달 비용 역시 줄어들기 때문이다. 

이날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는 이날 ‘기준금리 인하가 가계 및 기업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를 통해 기준금리 0.25%포인트 인하할 경우 가계·기업의 이자 부담이 각각 2조5000억원, 3조5000억원 가량 줄어들 것이라고 밝혔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진성준 의원이 한은을 통해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한은이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내리고 대출금리 하락 폭도 같다고 가정하면 가계대출 차주의 연간 이자 부담은 약 3조원 줄어든다. 한은이 2분기 말 가계대출 잔액에 변동금리부 대출 비중(67.7%)을 적용해 계산한 결과다.

소상공인(자영업자)을 포함한 기업의 이자 부담도 줄어든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양부남 의원이 한은을 통해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대출금리가 0.25%포인트 내렸을 때 자영업자의 이자 부담은 1조7000억원가량 줄어든다. 

자영업자 중 금리 인상에 취약하다고 분류되는 다중채무자의 경우, 같은 조건일 때 이자 부담이 1조2000억원(1인당 69만원) 감소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연내 추가 인하는 글쎄… 해 바뀌어야 가능할 듯

한은이 통화정책 기조를 전환하면서 추가 금리 인하 시점에 관심이 쏠린다. 연내 남은 금융통화위원회는 단 한 차례로 금융 안정 등을 고려했을 때 내년 1분기에 가능할 것이란 전망이다.

주택가격 상승과 가계부채 누증 등이 한은의 발목을 잡고 있다. 금통위원들의 3개월 포워드 가이던스를 보면  5명의 위원이 3개월 후에도 3.25%를 유지해야 한다고 했으며 나머지 한 명은 3.25%보다 낮은 수준으로 인하할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큰 변수가 없다면 적어도 내년 1월까지는 기준금리에 변동이 없을 것이란 뜻이다.

이창용 총재도 큰 폭의 기준금리 인하는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향후 금리 방향에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물가 안정이며 그다음은 가계부채 및 부동산 가격 등 금융 안정, 다른 한편은 성장률 등 종합적 요소를 두고 판단할 것”이라면서도 “기준금리를 소폭 내린 뒤 그 효과를 지켜볼 것”이라고 했다.

백윤민 교보증권 연구원은 “현실적으로 11월에 연속적인 금리 인하에 나서기 어려운 상황인만큼 추가 기준금리 인하 시점은 내년 1분기가 될 것”이라며 “내년에 급격한 경기위축이 발생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기본적으로 한은이 중립금리 중간값 전후 수준까지 2~3회 정도 기준금리 인하에 나설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윤여삼 메리츠증권 연구원 역시 “금리인하로 인한 금융안정 자극 정도는 정부의 노력으로 잡을 수 있다는 점에서 11월은 동결, 내년 1분기 중 1월 인하 검토가 유력하다”면서 “당분간 가계부채 증가 정도만 안정되면 시장이 추정하고 있는 중립수준에서 금리인하 마무리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한재희 기자 onej@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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