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정부의 대출 규제 강화로 오르기만 하던 대출금리가 하락 조짐을 보이고 있다. 경기기부진이 계속되면서 기준금리를 묶어 둘 수 없을 것이란 기대감이 반영된 탓이다. 실수요자 사이에서는 추가 규제가 나오기 전에 집을 사야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연초 가계대출 온기가 가능할지 점검해 봤다. [편집자주]
#직장인 A씨는 지난해 연말 주택담보대출(주담대)을 받기 위해 은행을 찾았다가 다주택자라는 조건 때문에 승인이 거절됐다. 대출총량 규제가 강화되면서 은행들이 다주택자 대출을 모두 막았기 때문이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새해가 되면 은행 대출 한도가 리셋되는 만큼 대출 문턱이 낮아질 수 있다는 것을 듣고 해가 바뀐 뒤 다시 은행을 찾았다. 하지만 다주택자의 경우 여전히 불가하다는 대답만 듣고 돌아와야 했다.
금융당국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가계대출과 관련해 관리 기조를 이어가겠다는 입장을 확실히 했다. 은행권뿐 아니라 제2금융에까지 들여다보겠다는 방침인데, 총량 규제를 확대할 경우, 실수요자들 피해가 적지 않을 거란 전망도 만만찮다.
28일 금융당국 등에 따르면 지난해 연간 가계대출 증가액은 41조원을 기록했다. 전년 10조1000억원 보다 4배 이상 늘어난 규모다. 금융당국의 강한 규제로 연말부터 증가폭 감소 추세가 나타나긴 했지만 새해 들어서도 같은 흐름이 이어질지는 지켜봐야 한다.
가계대출 폭증 원인은 주택담보대출(주담대)에 있다. 은행권 주담대는 지난 1년간 57조1000억원 증가했다. 전년 증가액 45조원보다 10조원 이상이 많다. 반면 기타 대출은 지난해 15조5000억원 감소했다.
업권별로는 은행권 가계대출이 46조2000억원 늘어 전년(37조1000억원) 대비 증가폭이 확대됐다. 제2금융권 가계대출은 4조6000억원 줄어 전년(27조원 감소) 대비 감소폭이 크게 줄었다.
2금융권 가계대출의 경우 지난해 하반기 들어 큰 폭으로 뛰었다. 은행들이 대출 총량 규제에 따라 대출 중단 등 특단의 조치를 내놓으면서 ‘풍선효과’가 나타난 셈이다. 지난해 10월 2금융권 가계대출은 한 달 사이 2조7000억원 증가했는데 전월 3000억원 감소에서 큰 폭으로 증가하는 모습을 보였다.
올해는 지난해와 같은 가계대출 급증은 없을 거란 전망이 많다. 정부가 대출규제 기조를 분명히 한 탓이다. 최근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정치적 이슈로 금융시장 불확실성이 높아진 데다 부동산 시장 상황을 감안해 강화된 관리 기조를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가계부채 총량을 경상성장률 증가율(3.8%) 범위 내로 관리하고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 강화로 차주의 상환 능력에 맞는 대출 관행을 정착시키겠다는 방침이다. 다만 구체적인 대출심사는 은행 자율로 해나간다고 강조했다.
새해 들어 은행들의 대출 한도에 여력이 생겼다 하더라도 연간으로 관리해야 하는 만큼 대출 취급을 급격하게 늘릴 수 없다. 실제로 은행들은 특정 대출 한도를 조정하면서도 다주택자 혹은 소득에 맞춰 대출 한도 축소 등 대출 조건을 까다롭게 보고 있다.
은행권 관계자는 “올해 역시 가계대출 규제 기조가 이어질 전망이어서 무분별한 대출 증가는 없을 것”이라면서 “이미 은행권과 제2금융권 모두 가계대출 관리를 지속하고 있어서 지난해 말과 비슷한 수준에서 관리 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은행권 대출 문턱이 여전히 높은 만큼 2금융권 풍선효과 역시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지난해 말 금융당국은 2금융권에도 연간 가계대출 관리 계획을 마련하도록 주문한 바 있다. 올해 가계대출 총량 관리 범위를 2금융권까지 확대할 가능성도 있다는 뜻이다.
이 경우 서민 금융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중저신용자 대상 중금리 대출 공급이 줄어들 거란 전망이 우선 나온다. 다만 현장에서는 서민금융 규모를 확 줄이는 수준까지 손대기는 어려울거란 진단을 내놓는다.
한 상호금융 관계자는 “지난 2021년 저금리 시대 가계대출이 급증했을 당시에도 2금융권 대출 규제가 검토됐지만 서민금융 역할 등을 이유로 대출총량규제를 도입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재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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