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주식시장의 저평가는 어제 오늘 얘기가 아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오너기업 관련 상장사 주가는 유독 저평가 현상이 심하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상속이나 승계 이슈도 적지 않은 이유로 포함된다. 이를 바로 잡기 위해 정치권도 나선 상황. 지난해 밸류업 열풍에 이어 올해 조기대선까지, 저평가 해소와 함께 건전한 투자문화 정착을 위한 과제들을 짚어봤다. [편집자주]
정치권이 상속세를 줄이기 위해 주가를 인위적으로 낮추는 기업에 칼을 뽑았다. 주가순자산비율(PBR) 0.8배 미만 상장사의 상속세 산정 기준을 시가에서 순자산 등으로 바꾸는 법안을 내놓으면서다. 상속세 절감을 위해 주가 부양에 외면하고 있는 대기업들이 타깃이 될 전망이다.
1일 국회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지난달 9일 이소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상속세 및 증여세법’ 일부 개정안은 PBR 0.8배 미만 상장사 최대주주가 상장주식을 상속·증여할 때는 비상장주식처럼 자산·수익 등을 반영 평가하겠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평가 가액의 하한선이 순자산가치의 80%라는 기준을 세운 것이다.
관련 법안이 나온 건 현행법상 주가가 낮으면 낮을수록 상속·증여세를 적게 내게 돼 대주주에게 유리하다는 이유에서다. 상속·증여세법에서 상장주식은 상속·증여일을 기준으로 한 시가를 과세표준으로 삼는데 여기서 시가는 ▲상속·증여일 전후 2개월 종가 평균 ▲상속·증여일 당일 종가 ▲상속·증여일 전후 2개월 중 최저 종가 중 가장 낮은 금액으로 결정된다.
이렇다 보니 경영권 승계를 앞둔 기업들은 계열사 간 주식거래, 유상증자, 합병·분할 등을 통해 주가를 인위적으로 낮추는 행위를 벌일 가능성이 크다.
이소영 의원은 “현행 제도는 상장주식의 주가가 상속세·증여세 산정에 영향을 주는 구조로 주가를 인위적으로 낮출수록 상속·증여에 유리한 상황”이라며 “이는 한국 주식시장에서 PBR 1 미만의 저평가 기업이 만연한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개정안이 통과되면 최대주주가 주식 저평가를 유도하는 행위를 방지해 정당한 가치 평가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재 국내 증시 저평가 문제는 심각하다. 1년 전 정부가 배당 확대 등에 중점을 둔 밸류업 프로그램으로 일부 개선되긴 했으나 대형주는 요지부동이다. 밸류업 프로그램 기간과 맞물렸지만 오너기업에겐 예외였던 셈이다.
지난달 말 기준 대형주로 구성된 코스피200의 PBR은 평균 0.90배로 1년 전(0.96배)보다 0.06 감소했다. 같은 기간 코스피 평균 감소 폭 0.04(0.96→0.92배)보다 컸다. 미국 등 선진국 23개국 평균(3.5배), 중국 등 신흥국 24개국 평균(1.8배)을 크게 밑돌았다.
주식 저평가와 상속세가 맞물린 만큼 법안 통과 시 대기업, 특히 상속과 민감한 지주회사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한다. 총수 일가는 지주회사 지분을 통해 자회사 전체를 간접 지배하고 승계 작업도 지주회사를 중심으로 진행한다. 총수 일가와 주주들의 이해관계가 일치하지 않은 구조인 셈이다.
실제 현재 공정자산총액 상위 10개 소유집중그룹 소속 지주회사(삼성물산·SK·현대모비스·LG·롯데지주·한화·HD현대·GS·이마트·CJ)의 PBR은 평균 0.53배로 코스피 PBR(0.92배)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총수 일가의 ‘주가 누르기’ 사례는 단순 기우가 아니다. 삼성그룹은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을 합병할 때 그룹 지주사인 삼성물산 주가를 떨어트려 이재용 당시 부회장이 대주주로 있던 제일모직에 유리하게 합병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삼성물산 주가는 2014년 하반기 평균 7만1795원이었으나 합병을 발표한 2015년 5월 평균주가는 5만5767원으로 22.3% 하락했다.
이동섭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사무국장은 “(지주회사의) 주가가 하락하면 최대주주가 벌을 받는 게 아니라 오히려 세금 절감으로 상을 받게 된다”며 “PBR 0.8배 미만 기업이 비상장사처럼 상속세를 산정한다면 주가를 누를 필요가 없어 저평가 해소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윤승준 기자
sjyoon@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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