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이슈에 올해 상반기 대기업 그룹 시가총액 순위가 요동쳤다.
트럼프 미 행정부의 수혜 업종으로 꼽히는 원자력과 방산 기업을 핵심 계열사로 둔 두산과 한화 등은 시가총액이 크게 늘어난 반면, 보호무역주의 기조 속 업황이 침체한 2차전지와 바이오 기업이 속한 LG, 셀트리온 등은 역주행했다.
‘이재명 효과’도 있었다. 새 정부에서 추진 중인 인공지능(AI) 진흥책에 따라 카카오와 네이버 시총이 크게 늘었고, 상법 개정 기대로 SK 등 지주사 그룹도 호재를 입었다.
30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주말 기준 공시대상 기업집단 시가총액 순위(우선주 포함)를 보면 삼성이 621조5828억원으로 1위를 차지한 가운데 ▲SK 299조1306억원 ▲현대차 170조711억원 ▲LG 136조8955억원 ▲HD현대 113조8012억원 ▲한화 102조635억원 ▲두산 65조4189억원 ▲카카오 60조2525억원 ▲포스코 43조4112억원 ▲네이버 40조7975억원 순으로 나타났다.
작년 말과 비교하면 6개 그룹의 순위가 바뀌었다. 4위였던 현대차가 3위로 올라갔고 한화는 7위에서 6위로, 두산은 11위에서 7위로, 카카오는 9위에서 8위로 각각 상승했다. 반대로 3위였던 LG는 4위로 내려갔고 포스코는 8위에서 9위로, 셀트리온은 6위에서 11위로 하락했다.
증가율로 보면 시총 상위 15개(27일 기준) 기업집단 중 두산이 159%(증가액 40조1633억원)로 가장 높았고 한화가 137%(59조39억원)로 뒤를 이었다. 그다음 카카오 71.9%(25조2104억원), LS 68.0%(8조480억원), SK 47.6%(96조4029억원), HMM 47.6%(7조4017억원), HD현대 46.5%(36조1317억원), 한진 38.2%(5조4872억원), 네이버 29.5%(9조2844억원) 순이었다.
시총이 감소한 그룹은 3곳이었다. LG가 5.4%(-7조7509억원) 줄어들며 10대 그룹 중 유일하게 뒷걸음질했다. 2월 LG CNS가 상장하면서 계열사 수가 늘었음에도 시총 부진을 막지 못했다. 셀트리온(-12.4%)과 에코프로(-17.3%) 역시 반년 새 시총이 쪼그라들었다.
그룹별 시총 지각변동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정책에 따른 영향으로 풀이된다. 두산은 트럼프 행정부의 원자력 정책에 수혜를 입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5월 미국 내 원자력 발전 용량을 2050년까지 4배 확대하는 행정명령을 발표했다. 이 같은 소식에 원전 계열사 두산에너빌리티 주가는 연초 1만원대에서 현재 6만원대로 뛰었고 이는 그룹 시총 증가로 이어졌다.
한화의 경우 트럼프 대통령이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의 방위비 증액을 촉구하고 미국 해군의 전함·함정 유지보수(MRO) 사업에 대한 예산을 확대하면서 시총에 불이 붙었다. 핵심 방산·조선 계열사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한화오션이 연초 이후 주가가 172.6%와 112.6%씩 급등하며 그룹 시총을 끌어올렸다. 트럼프 행정부의 중국산 선박 관세 부과 등 강경한 대중 무역·관세 정책은 HD현대중공업 등 조선업 계열사를 주축으로 한 HD현대그룹에 호재로 작용했다.
새 정부 출범도 영향을 미쳤다. 이재명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공약한 AI 100조원 민관 투자, GPU 기반 데이터센터 구축 등 AI 정책에 기대감이 카카오, 네이버 등 IT 그룹의 시총을 키웠다. 특히 카카오페이는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 수혜 종목으로 떠오르면서 그룹의 시총 성장을 견인했다. 카카오페이의 시총 증가 폭은 연초 이후 약 8조원에 달한다.
이사의 충실의무 강화 등 상법 개정도 지주사 체제 그룹의 시총을 확대했다. ㈜SK 50.3%, ㈜한화 250.9%, ㈜HD현대 60.1%, ㈜두산 155.3% 등은 작년 말 대비 주가가 최대 세 자릿수 이상 뛰었다. 상법 개정 시 자사주 소각, 지배구조 개선 기대 등에 나설 것이라는 기대에서다.
반면 트럼프 행정부의 전기차와 2차전지 IRA 보조금 축소 정책에 2차전지를 계열사로 둔 그룹은 시총이 줄어들었다. 지난달 미 하원은 전기차 보조금 지급 종료 시한을 6년 앞당기는 법안이 통과하며 정책을 현실화했다. 연초부터 시작한 ‘트럼프 악재’에 LG그룹 시총의 절반 정도 차지하는 배터리업체 LG에너지솔루션은 올 들어 시총이 약 14조원 이상 빠져나갔다. 포스코그룹은 보조금 축소 정책에 철강 고율 관세까지 겹치면서 시총이 2.1% 증가하는 데 그쳤다.
셀트리온은 트럼프 행정부의 의약품 상호관세 우려, 약가 최저 국제 기준 적용 등의 여파로 시총이 감소했다. 삼성은 시총 1위를 유지했으나 HBM 경쟁력 후퇴, 비(非)지주사 체제 등에 따른 영향으로 SK와의 시총 격차는 작년 말 340조원에서 현재 322조원으로 좁혀졌다.
이웅찬 iM증권 책임연구원은 “6월 들어 코스피가 500포인트 이상 오르면서 하반기 기대 업종을 전망하기 쉽지 않다”면서도 “수출은 안 좋아질 텐데 바이오는 그동안 주가가 워낙 눌려 있어서 금리 인하 등 호재가 있으면 뜰 수 있으나 2차전지는 하반기에도 어려울 것 같다. LG, 포스코 등 2차전지 비중이 큰 그룹에 좋은 일(시총 증가)은 없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했다.
윤승준 기자
sjyoon@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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