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봄, 알고리즘 기반 스테이블코인 테라USD(UST)와 자매 토큰 루나(LUNA)의 붕괴는 글로벌 가상자산 시장에 깊은 충격을 안겼다. 탈중앙화금융(DeFi)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테라 프로젝트는 단 1주일 만에 수십조원의 시가총액이 증발, 전 세계 수많은 투자자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안겼다.

이 사건은 단순한 프로젝트 실패를 넘어 디지털 화폐 전반의 신뢰와 구조적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며 각국 정부가 제도화를 본격 논의하게 되는 계기가 됐다.

한국 블록체인 기업 테라가 발행한 스테이블코인 '테라'가 무너지면서 자매코인격인 '루나'  역시 99% 폭락했다. 이 사태로 전 세계 가상자산 시가총액 약 5000억달러(650조원)이 증발한 것으로 추산된다. 테라 사태 직후 금융증권범죄합동수사단이 부활했고, 이를 1호 수사 대상으로 지정했다./ 사진 = 뉴스1
한국 블록체인 기업 테라가 발행한 스테이블코인 '테라'가 무너지면서 자매코인격인 '루나'  역시 99% 폭락했다. 이 사태로 전 세계 가상자산 시가총액 약 5000억달러(650조원)이 증발한 것으로 추산된다. 테라 사태 직후 금융증권범죄합동수사단이 부활했고, 이를 1호 수사 대상으로 지정했다./ 사진 = 뉴스1

제도화 논의의 기폭제가 된 테라 사태

28일 가상자산 업계에 따르면 테라 사태 이후 국내에서도 수만 명의 투자 피해가 발생, 국회를 중심으로 스테이블코인 제도화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알고리즘에 기반해 1달러 가치를 유지하던 테라는 담보 없이 루나의 수요와 공급만으로 가격을 방어하려 했다. 하지만 대규모 매도 압박에 무너지며 단 1주일 만에 수십조원의 시가총액이 증발했다. 

규제기관들은 테라 사태 직후 가상자산 관련 제도와 법의 필요성을 크게 깨달았다. 금융위원회는 테라 사태 직후인 2022년 6월 가상자산 시장 규율 강화를 위한 기본법 초안을 논의했고, 2023년 7월 국회는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법’을 제정했다.

미국과 유럽에서도 관련 규제 필요성이 급부상했다. 특히 미국 재무부, 연방준비제도(Fed), 증권거래위원회(SEC) 등이 스테이블코인 규제안을 검토, 민간 발행 디지털 자산에 대한 공적 감독 필요성을 강조했다. 유럽연합(EU)도 '미카(MiCA, Markets in Crypto-Assets)' 규제안에 스테이블코인 발행 요건과 준비금 요건을 명시했다.

동시에 각국 중앙은행은 민간 스테이블코인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디지털 화폐의 공공성과 책임성을 확보하겠다는 기조 아래, 국제결제은행(BIS) 역시 스테이블코인 리스크에 대한 공동연구와 권고안을 내놓았다.
 

공공 대 민간의 디지털 화폐 실험…리브라가 남긴 것

메타(구 페이스북)은 지난 2019년 스테이블코인 프로젝트 리브라(Libra)를 추진했으나,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의 강한 반발에 직면하며 좌초됐다. / 사진 =조선DB
메타(구 페이스북)은 지난 2019년 스테이블코인 프로젝트 리브라(Libra)를 추진했으나,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의 강한 반발에 직면하며 좌초됐다. / 사진 =조선DB

메타(구 페이스북)가 2019년 주도했던 스테이블코인 프로젝트 ‘리브라(Libra)’도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관심과 CBDC 논쟁에 물꼬를 튼 사건이다.

리브라는 전 세계 수십억명의 이용자를 바탕으로 단일 디지털 통화를 만들어 국경을 초월한 결제 시스템을 구축하겠다는 구상이었다. 초기 계획은 다국적 기업이 연합한 ‘리브라 협회’라는 발행 주체가 다양한 법정통화와 자산을 바스켓 형태로 담보 삼아 1:1 가치를 유지하는 글로벌 스테이블코인을 내놓는 것이었다.

하지만 프로젝트는 곧바로 국제 금융당국의 강한 반발에 직면했다. G7은 물론 미국 재무부, 유럽중앙은행(ECB) 등은 "리브라가 각국 통화 주권과 금융안정성에 심각한 위협이 된다"고 지적했다. 특히 페이스북이 전 세계 수십억 명의 사용자 기반을 통해 사실상 '민간 글로벌 통화'를 주도할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컸다.

이후 리브라는 '디엠(Diem)'으로 이름을 바꾸며 법정화폐에 단일 연동되는 구조로 축소됐다가 끝내 미국 정부의 압박을 넘어서지 못하고 2022년 프로젝트를 완전히 종료했다.

테라와 리브라 사태로 제도권에서는 가상자산 시장에 대한 근본적인 재정비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장됐다. 각국 중앙은행은 민간 주도 디지털 화폐의 부상에 대응해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개발에 속도를 내기 시작했고, 국제결제은행(BIS)도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공동 연구와 규제 권고안을 발표하며 공공 중심의 디지털 화폐 질서 구축에 나서는 계기가 됐다.

원재연 기자
wonjaeyeon@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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