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가상자산의 보조 수단정도로 취급되던 스테이블코인이 제도화 논쟁의 중심에 섰다. 테라 사태 이후 규제 필요성이 제기된 데 이어,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육성 기조를 공식화하면서 논의는 산업·통화정책 영역으로 번지고 있다. 한국에서도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 여부를 둘러싸고 여야 대선 후보들의 입장이 갈리고 있다. IT조선은 5편에 걸쳐 스테이블코인의 구조, 제도화 흐름, 국내외 정책 방향을 짚어봤다. [편집자주]

2022년 봄, 알고리즘형 스테이블코인 테라USD(UST)와 자매 토큰 루나(LUNA)가 연쇄 붕괴한 이후 스테이블코인은 국내 정책 논의의 중심에서 멀어졌다. '디지털 화폐'라는 이름 아래 자율성을 강조해온 시장은 급속히 신뢰를 잃었고, 정부와 국회는 규제와 통제에 무게를 싣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로부터 3년. 스테이블코인이 다시 제도화 논의의 무대 위에 올랐다. 이번에는 미국의 정책 전환과 환율 불안, 외화 연동 자산의 확산이라는 전혀 다른 이유 때문이다.

26일 가상자산 업계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 민병덕 의원은 원화 연동 스테이블코인의 발행 요건과 관리 기준을 담은 ‘디지털자산기본법’ 개정안을 발의할 예정이다. 법안에는 스테이블코인을 준비금 기반 디지털 자산으로 정의하고, 발행사에 대해 최소 50억원 이상의 준비금 보유, 실시간 준비금 공개, 회계 감사 및 분기 공시 등의 요건을 부과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정치권 안팎에선 이번 법안이 사실상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 제도화의 출발점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논의가 촉발된 배경에는 미국의 정책 변화가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재집권 이후 가상자산을 전략산업으로 분류하고, 민간 발행 스테이블코인의 제도화를 공식화했다. 미 의회는 준비금 기준, 발행 주체 요건, 이용자 보호 의무 등을 담은 법안을 재상정했으며, 재무부와 증권거래위원회(SEC)도 일정 요건을 갖춘 디지털 자산의 제도권 편입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다.

국내에선 환율 불안이 논의를 앞당기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올해 초 달러대비 원화 환율이 1400원을 넘긴 이후,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이 외환시장 안정성을 해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졌다. 현재 국내 주요 거래소에서 유통되는 스테이블코인은 대부분 외화 연동 형태지만, 유통량 통계나 준비금 검증 체계는 마련되지 않은 상태다.

대선 쟁점으로 등장한 스테이블코인

이에 정치권에서도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 도입을 둘러싼 공약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외화 스테이블코인의 확대에 따른 국부 유출 우려와 함께, 디지털 금융 경쟁력 확보를 위해 원화 기반 디지털 통화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된 결과다. 특히 스테이블코인이 단순 결제 수단을 넘어 금융 인프라의 일부로 자리잡고 있는 국제적 흐름이 반영된 것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아예 준비금 기반의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대선 공약으로 제시했다. 외화 중심의 디지털 자산 시장 구조를 개선하고, 스테이블코인을 제도권 안에서 관리 가능하게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이 후보는 “기술을 규제만 할 게 아니라 제도화해 관리 가능한 범위로 끌어들여야 한다”며 “국부 유출을 막고 산업도 키울 수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반대 의견도 적지 않다. 스테이블코인이 실질적으로는 민간 화폐의 역할을 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기축통화 체계와의 충돌이나 금융시장 불안정성을 확대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도 “준비금 구조와 환급 기준, 발행 주체의 책임 체계가 모두 불분명한 상황에서 무리한 제도화는 새로운 리스크를 만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아직 공식 입장을 밝히지 않았지만,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내부적으로 스테이블코인 제도화 가능성을 검토 중이다. 한국은행도 이 같은 논의에 가세하고 있다. 민간이 발행하는 원화 연동 스테이블코인이 통화체계의 안정성을 위협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한국은행은 디지털 통화 실험을 통해 중앙은행이 직접 설계한 원화 기반 디지털 자산 모델을 검토 중이다. 필요할 경우 민간이 아닌, 공공 주도의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추진할 수 있다는 입장도 내놓는다. 이를 위해 현재 도매형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시범 사업을 진행 중이며, 향후 지급결제 시스템과 연동 가능한 구조로 확대하는 방안도 논의하고 있다. 

한편 업계와 전문가들은 스테이블코인이 단순한 디지털 자산을 넘어 통화정책, 외환시장 안정, 금융산업 경쟁력과 직결된 전략 자산으로 진화하고 있다며 발행에 긍정적인 의견을 속속 내놓고 있다. 특히 미국과 중국 중심의 스테이블코인 생태계가 빠르게 확장되는 가운데, 원화 기반 디지털 통화 인프라 부재는 장기적으로 통화 주권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이종섭 서울대 경영대 교수는 “스테이블코인은 글로벌 지급결제 인프라에서 민간 혁신을 견인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며 “공공이 설계한 CBDC와 민간 주도의 스테이블코인이 서로의 한계를 보완하는 혼합 구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원재연 기자
wonjaeyeon@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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