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SK·LG 등 주요 그룹이 실적 부진과 기술 경쟁의 압박 속에서 사업 효율화와 구조조정에 나서고 있다. 재계 전반에 덩치를 키울 때가 아니라 ‘덜어낼 때’라는 인식이 공유되고 있는 셈이다.

삼성전자는 사업 단위에서의 통합 여부를 검토하며 기술력과 수익성 재정비에 나섰다. SK그룹은 부진한 계열사에 대한 전면 수술에 들어갔다. LG그룹도 수익성 없는 사업을 정리하는 동시에 인력 효율화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노태문 삼성전자 DX부문장 직무대행 겸 MX사업부장(왼쪽)과 박용인 시스템LSI사업부장(사장) / 삼성전자
노태문 삼성전자 DX부문장 직무대행 겸 MX사업부장(왼쪽)과 박용인 시스템LSI사업부장(사장) / 삼성전자

삼성, 시스템LSI 사업 진단…통합 카드 만지작

9일 업계 소식을 살펴보면 삼성전자는 2024년 신설된 삼성글로벌리서치 내 경영진단실이 올 1월부터 파견돼 DS부문 내 시스템LSI 사업부의 내부 진단과 구조 개편을 검토하고 있다. 

SoC(시스템온칩) 개발 조직을 모바일 경험(MX)사업부로 편입해 애플과 같은 칩 설계 방식으로 전환을 꾀하는 시나리오, 종합반도체기업(IDM)처럼 시스템LSI 사업부와 파운드리 사업부를 합쳐 원가 절감과 빠른 의사결정을 기대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다만 회사 내부에선 이같은 ‘대수술’의 실익에 의구심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MX사업부가 퀄컴·미디어텍 등으로 공급망을 다변화해왔는데 시스템LSI와의 통합은 기존 거래선과 충돌을 야기할 수 있다는 우려다. 파운드리와 통합 역시 정보 유출 가능성으로 인해 고객사 신뢰 약화를 초래할 수 있어 부담이 클 것이란 주장이다.

수익성·경쟁력 측면에서 시너지가 나올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삼성전자 한 임직원은 “파운드리 사업을 키우려면 전략적으로 시스템LSI가 MX사업부로 편입되는 방안이 바람직할 수 있다”면서도 “다만 파운드리 사업을 성장시키려다 애플, 중국 기업과 치열한 경쟁 중인 MX사업부는가 뒤쳐지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삼성전자는 조직 재편 여부와 관련없이 시스템LSI 내 저수익 제품군 정리 등 구조 슬리밍 작업에 돌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추형욱 SK이노베이션 신임 대표이사(왼쪽)와 장용호 SK이노베이션 신임 총괄사장 / SK이노베이션
추형욱 SK이노베이션 신임 대표이사(왼쪽)와 장용호 SK이노베이션 신임 총괄사장 / SK이노베이션

SK이노, 장용호·추형욱 체제로 전환…‘군살 빼기’ 본격화

SK그룹은 부진한 계열사의 전면 수술에 나섰다. SK이노베이션은 5월 28일 이사회를 열어 장용호 SK㈜ 대표이사를 CEO인 총괄사장, 추형욱 SK이노베이션 E&S 사장을 대표이사에 선임하는 안건을 승인했다. 2023년 말 인사에서 총괄사장에 오른 박상규 대표가 이례적으로 취임 후 불과 1년 반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 물러난 것이다.

SK이노베이션은 정유·화학 등 기존 수익원 부문이 부진하다. 그동안 추진해온 SK엔무브 상장 등이 무산되자 박 대표가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는 분석이 나온다.

장용호 대표는 스페셜티, SK실트론 등 그룹 내 알짜 자회사의 매각과 자산 재편을 주도한 인물이다. 이번 인사로 그룹이 SK온을 포함한 SK이노베이션 전반에 강력한 구조조정을 예고한 것으로 풀이된다. 재계는 13~14일 열리는 SK그룹 경영전략회의를 기점으로 ‘장용호표’ 구조조정안이 윤곽을 드러낼 것으로 보고 있다.

자회사 SK온의 배터리 사업은 수요 정체로 고정비 부담이 심화되며 누적 영업손실이 4조원에 육박해 구조조정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SK온은 일부 유휴 생산시설 매각을 검토하고 있다. IPO 일정도 내부 회의론이 제기되며 수정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LG전자의 200kW 급속 충전기와 실시간으로 전력량 등을 확인할 수 있는 클라우드 기반의 관제 솔루션 ‘이센트릭(e-Centric)’ / LG전자
LG전자의 200kW 급속 충전기와 실시간으로 전력량 등을 확인할 수 있는 클라우드 기반의 관제 솔루션 ‘이센트릭(e-Centric)’ / LG전자

LG, 구광모 ‘선택과 집중’ 가속…비핵심 사업 정리 이어져

LG그룹은 구광모 회장의 ‘선택과 집중’ 기조 아래 비핵심 사업 철수와 인력 구조조정을 동시에 진행 중이다. 

LG전자의 북미 전기차 충전기 사업은 시작 3년 만에 시장 지연과 수익성 악화로 철수 결정을 내렸다. 에스테틱과 수처리 사업도 이미 매각했다. 그룹 내 투자 점검 회의에서는 AI, B2B 중심 신사업 확대와 함께 사업 구조 개편이 핵심 의제로 떠올랐다.

고용 안정성과 계열사 시너지라는 명분에 따른 ‘인적 유연화’도 시행되고 있다. LG디스플레이는 최근 국내 생산직을 LG이노텍으로 파견하는 '단기 사외 파견제'를 도입했다. 생산직 대상 희망퇴직도 진행 중이다. LG디스플레이의 전체 인력은 LCD 경쟁력 약화로 인한 인력 재배치에 따라 2년 새 14% 가까이 줄었다. 

이광영 기자
gwang0e@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