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박모(34)씨는 최근 코스피가 3000을 넘자, 주식 시세표를 다시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문제는 종잣돈. 혹시 몰라 신용대출(마이너스통장)을 조회해 보니 금리가 1년 전과 비교해 1%포인트 이상 떨어져 있었다. 다음달 3단계 스트레스 DSR 이 적용되면 대출 한도가 줄어든다는 뉴스를 본터라 일단 가용한도까지 신청하고 승인만 기다리고 있다.

주요 은행 주택담보대출(주담대) 금리가 신용에만 기댄 신용대출 금리보다 높은 ‘역전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통상 담보가 없는 신용대출은 위험도가 높은 만큼 더 높은 금리를 책정하는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시장금리 하락과 대출 규제가 맞물리면서 주담대 금리가 더 높은 ‘기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올해 1분기도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주택 구입)이 이어지면서 주택담보대출을 중심으로 전체 가계 부채가 다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뉴스1
올해 1분기도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주택 구입)이 이어지면서 주택담보대출을 중심으로 전체 가계 부채가 다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뉴스1

24일 은행업계 등에 따르면 현재 4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의 신용대출 평균 금리(금융채 6개월 기준)는 연 3.80~4.63% 수준으로 형성돼 있다. 반면 주담대 금리는 연 4.07%~5.09%로 하단은 0.27%포인트, 상단은 0.46%포인트 정도 더 높다.   

이는 시장금리 하락에도 금융당국이 가계부채 관리 차원에서 주담대 총량을 강하게 조절하고 있기 때문이다. 은행 대출금리는 금융채 5년물 등 시장금리에 가산금리를 더하고 우대금리를 적용해 산출하는데, 실제 시중은행의 주담대를 포함한 변동형 상품 금리를 산정할 때 기준이 되는 코픽스(COFIX·자금조달비용지수)는 지난 5월 2.63%로 집계됐다. 8개월 연속 하락으로 2년 11개월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이에 신용대출 금리는 시장 상황을 반영, 하락 추세지만 주담대 금리는 역행하고 있다. 금리가 낮아지면 대출 수요가 늘어나 부동산 시장으로 쏠릴 것을 우려한 정부와 금융당국이 주담대 대출 규제를 옥죄고 있다. 

실제로 지난 16일 금융당국은 은행권 가계대출 담당 부행장을 소집해 주담대 취급 시 만기 40·50년 상품을 팔고 있는 은행들에 DSR을 우회해 대출 한도를 높이는 측면이 없는지 점검했다. 은행별 대출 증가 속도, 주택담보대출(주담대) 만기 운용 방식, 전세대출 취급 현황 등도 점검하면서 NH농협은행과 SC제일은행 등 일부 은행이 주담대 만기를 30년에서 40년으로 늘려 대출 한도를 확대한 점을 문제 삼기도 했다.

이달 중 금감원은 해당 은행들에 대한 현장점검에 착수한다. DSR 규제를 회피하거나, DSR 대출 비중이 기준 이상인 사례가 있는지를 정밀 점검하기 위해서다.

금리 역전현상은 결국 신용대출 잔액 증가로 이어졌다. 이달 들어 5대 시중은행의 신용대출 잔액은 지난 19일 기준 104조4027억원으로, 전월 말 대비 1조882억원(1.1%) 증가했다. 이달 19일까지의 신용대출 증가액은 이미 지난달 월간 증가폭(8214억원)을 넘어섰다. 이 같은 추세라면 지난 2021년 7월 한 달 동안 증가한 1조8636억원을 넘어설 수도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당시는 저금리 기조가 이어지면서 ‘빚투’와 ‘영끌’ 투자가 극에 달했을 때다.

업계서는 금리뿐 아니라 3단계 스트레스 DSR(총원리금부채상환비율) 시행을 앞두고 대출 한도 축소를 우려한 차주들이 마이너스 통장 한도를 미리 확보해 두려는 움직임도 겹쳤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 최근 코스피지수가 3000을 돌파하며 상승세를 이어가자 ‘빚투’(빚내서 투자) 수요도 적지 않다.

금융당국은 내달 3단계 스트레스 DSR 규제가 시행되는 만큼 대출 억제 효과가 예상되는 만큼 추가 대책을 내놓기보다는 은행별 가계대출 목표치를 점검하겠다는 입장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최근 신용대출 금리 하락과 집값 상승, 3단계 DSR, 투자 수요 등이 한번에 겹치며 큰 폭으로 대출이 증가한 것으로 보인다”며 “신용대출 일부는 레버리지를 활용한 주식투자에 나서는 등 과거와 비슷한 조짐을 보이고 있어 시장 변동성이 커지면 우려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재희 기자
onej@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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