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유심 정보 유출 사고와 관련해 SK텔레콤(대표 유영상)에 "번호이동 위약금을 면제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2300만명에 달하는 가입자 이탈이 현실화될 경우, 통신 시장에 지각변동이 일 것으로 보인다.

3일 서울 종로구 SK텔레콤 대리점 모습. / 뉴스1
3일 서울 종로구 SK텔레콤 대리점 모습. / 뉴스1

과기정통부는 4일 유심 해킹 사건과 관련해 SK텔레콤 이용약관 제43조상 위약금을 면제해야 하는 회사의 귀책사유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SK텔레콤의 계정정보 관리 부실, 과거 침해사고 대응 미흡, 중요 정부 암호화 조치 미흡, 정보통신망법 위반 등 과실이 발견된 점, 고객과의 계약상 주된 의무인 안전한 통신서비스 제공 의무를 다하지 못한 점 등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SK텔레콤 이용약관 제43조(위약금 면제)는 '고객이 회사의 귀책사유로 인해 계약을 해지할 경우 위약금 납부 의무가 면제된다'고 정해져 있다. 

과기정통부는 이번 판단을 위해 사고 초기 SK텔레콤 이용약관의 위약금 면제 규정을 이번 사고에 적용 가능한지를 두고 4개 기관으로부터 법률 자문을 받았다. 당시 법률 자문기관들은 SK텔레콤의 과실이 인정된다면 이용자가 계약 해지 시 위약금 면제 규정 적용이 가능하다는 공통된 의견을 제시했다.

과기정통부는 민관합동조사단 조사가 마무리되는 시점에 보다 정확한 판단을 위해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6월 26일부터 7월 2일까지 5개 기관에 추가적인 법률 자문을 진행했다.

대부분 법률 자문기관(4개 기관)에서는 이번 해킹사고를 SK텔레콤의 과실로 판단했다. 유심정보 유출은 안전한 통신서비스 제공이라는 계약의 주요 의무 위반이므로 위약금 면제 규정 적용이 가능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법률 자문기관 한 곳은 현재 자료로 판단이 어렵다고 판단을 유보했다.

다만 과기정통부의 판단은 법으로 정해진 강제사항은 아니지만 SK텔레콤은 수용할 수밖에 없을 전망이다.  하루 전인 3일 이재명 대통령이 "계약 해지 과정에서 회사의 귀책 사유로 피해자가 손해 보는 일이 없어야 한다"며 "국민 피해가 있었고 국민의 피해에 대한 보상에 대한 감정을 충분히 반영해야 한다"고 주문한 것이 그 이유다.

또 유영상 SK텔레콤 대표는 4월 30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법률적으로 문제가 없다면 (위약금) 폐지 방향으로 가겠다"고 답하기도 했다.

SK텔레콤은 신중하다. 회사 관계자는 "위약금 면제 여부를 꾸준히 검토해 왔다"며 "결과가 정해지면 추후에 밝히겠다"고 전했다. SK텔레콤은 위약금 면제 여부 외에 고객 1인당 지급할 보상금 규모도 논의하고 있다.

위약금 면제가 현실화할 경우 SK텔레콤 이탈 고객은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해킹 사태가 본격화한 4월 26일부터 신규가입 영업 재개 직전인 6월 23일까지 SK텔레콤과 SK텔레콤 망을 쓰는 알뜰폰에서 다른 통신사로 옮긴 가입자가 81만6000명에 달한 게 대표적이다.

이들 중 일부는 SK텔레콤에 위약금을 물고도 통신사를 옮겼다. 위약금 면제가 공식화하면 다른 통신사로 넘어갈 때 장벽이 아예 사라지는 만큼 이탈 러시가 가속화할 전망이다.

가입자 이탈 추세가 이어지면 통신업계 1위인 SK텔레콤 아성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과기정통부 무선 통신서비스 통계 현황에 따르면 올해 4월 SK텔레콤의 휴대폰 회선 가입 회선은 2292만4260개로 전체 가입 회선의 40.08%을 기록하며 겨우 40%대를 사수했다. 같은 기간 KT의 점유율은 23.45%(1341만3968개), LG유플러스 19.22%(1099만2877개), 알뜰폰 17.24%(986만1974개)이다.

업계 관계자는 "보통 통신 소비자들은 무선과 유선 상품을 결합해 한 통신사를 쓰는 경우가 많다'며 "이번에 위약금 면제로 SK텔레콤 고객 이탈이 늘어나면 무선은 물론 유선 시장까지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내다봤다.

다른 관계자는 "위약금 면제는 통신사 입장에서 가벼이 볼 게 아니다"며 "과기정통부가 '모든 사이버 침해사고가 약관상 위약금 면제에 해당하지는 않는다'고 밝히긴 했지만 이번 SK텔레콤 위약금 면제가 앞으로 선례로 남을 수 있다"고 했다.

김광연 기자
fun3503@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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