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이 폐지되면서 통신사 간 합법적인 보조금 경쟁이 가능해졌다. 하지만 소비자 대부분은 여전히 혜택을 체감하지 못한다. ‘성지’로 불리는 일부 휴대폰 판매점에서만 고액 보조금이 제공되고 있기 때문이다. 성지의 존재를 아는 일부 소비자만 ‘공짜폰’ 수준의 가격에 휴대폰을 구매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7월 21일 서울의 한 휴대폰 대리점에 단통법폐지 홍보물이 내걸려 있다. / 뉴스1
7월 21일 서울의 한 휴대폰 대리점에 단통법폐지 홍보물이 내걸려 있다. / 뉴스1

30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휴대폰 성지들은 포털 사이트 카페·블로그, 밴드 등 판매채널을 활용해 대대적으로 홍보 활동을 벌이며 가입자를 유치하고 있다. 실제로 서류 작성은 오프라인에서 이뤄지지만 각종 정보 제공은 온라인에서 미리 밝히는 식이다.

일례로 성지라 불리는 경기도 하남의 한 판매점은 밴드에서 가입자를 모은다. 기존 이용자들을 리스트화해 정기적으로 문자로 보내 정보를 제공한다. 특히 가입자들에게 밴드 가입을 권하고 밴드에 추가 정보를 올린다. 

밴드 가입을 위해서는 가입자 휴대폰번호와 이름 등이 필요하다. 7월 28일 기준 해당 판매점에서 SK텔레콤으로 번호이동했을 때 256GB 기준 출고가 148만5000원인 삼성전자 최신 폴더블폰 갤럭시Z플립7을 현금가 27만원에 살 수 있다. 

부산 수영구의 한 판매점에서 SK텔레콤 번호이동했을 때 256GB 기준 출고가 115만5000원인 삼성 갤럭시S25(올해 2월 출시)을 현금가 1만원에 살 수 있다. 해당 판매점은 카카오톡 오픈채팅을 통해 가입자의 문의를 먼저 받는다.

네이버 등 주요 포털사이트 내 성지 관련 인기 카페에 가입하면 아예 전국 성지의 휴대폰 시세표를 한번에 볼 수 있다. 하지만 성지의 위치는 대부분 바로 확인할 수 없다. 좌표라 불리는 성지 위치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글과 댓글을 올리는 등 카페에서 꾸준히 활동해야 한다.

네이버 성지 전문 카페의 게시글. / 네이버 카페 갈무리
네이버 성지 전문 카페의 게시글. / 네이버 카페 갈무리

과거 전국 각지 성지 시세는 휴대폰 전문 커뮤니티 등에 주로 올라왔다. 소비자들은 이를 정보 삼아 성지의 존재를 인지하고 발품을 팔아 휴대폰을 싼값에 샀다. 하지만 방송통신위원회 등의 단속으로 인해 최근 성지 정보를 곧바로 취득하기 어려워졌다. 성지가 정부 단속을 피해 밴드, 카카오톡 등으로 우회해 가입자들을 가려 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단통법 폐지 이후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방통위는 휴대폰 유통 관련 정보취약계층의 지원금 소외 등 제도 변경으로 인한 역기능이 나타나지 않도록 시장 상황을 면밀히 관찰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단통법 폐지 이후에도 휴대폰 정보력 격차에 따른 차별이 여전하다.

휴대폰 유통업계는 단통법 폐지 후에도 시장 상황이 크게 변하지 않은 가운데 일부 대리점과 판매점 간 보조금 차이가 큰 상황을 인지하는 사람만 덕을 보고 있다고 지적한다. 가령 대리점에서 30만원, 판매점에서 50만원의 보조금을 준다고 했을 때 해당 정보를 아는 일부의 고객만 판매점에서 폰을 사며 비용을 줄이고 있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휴대폰 유통업계 관계자는 "모르고 사면 '호갱'(호구+고객)이라는 말이 여전히 통용되는 게 요즘이다"라며 "아는 사람만 폰을 싸게 사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성지가 여러 광고를 하고 있는데 어디까지 허위·과대광고로 볼 것인지, 통신사가 대리점·판매점 보조금 경쟁에 관여할 경우 담합으로 볼 것인지 정부에서 앞으로 규율할 문제가 많다"고 지적했다.

김광연 기자
fun3503@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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