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구글을 앞세워 우리나라의 5000대 1 축적 고정밀 지도 데이터 반출을 요구하고 있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이를 비관세 장벽으로 규정하며 통상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안타깝게도 협상 시한은 임박했다.

이 사안은 단순히 빅테크 기업에 고정밀 공간 정보를 제공하느냐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국가안보와 주권이 걸린 문제다.

이미 산업계와 학계는 고정밀 지도 데이터를 단순한 공간정보가 아닌, 군사·산업기술이 결합된 전략자산이라고 봤다. 실제 지도에는 군사기지, 통신시설 등 핵심 기반 인프라가 포함돼 있다. 국토교통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문화체육관광부, 산업통상자원부 등 여러 부처가 엮여 있는 배경이다.

특히 산업계는 2007년부터 지속적으로 지도 데이터 반출을 요구해온 구글의 요구와 관련해 '무임승차'라고 지적한다. 구글은 국내에 데이터센터도 없고, 서버도 두지 않으며 한국법에 따른 보안 요건도 갖추지 않았다. 그럼에도 우리 세금으로 구축된 국가 데이터를 해외에서 활용하겠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자국 내 투자와 책임은 회피하면서 데이터만 가져가려는 행태다.

이런 가운데 반출 여부를 판단하고 결정해야 할 주요 장관과 장관 후보자들은 신중론을 펼친다. 7월 29일 인사청문회에 출석한 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는 “5000대 1 지도는 굉장히 정밀한 수준으로, 이를 공개한 국가는 거의 없다”면서도 “국방과 국민 안전 문제를 고려해 매우 신중해야 한다”고 밝혔다.

배경훈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역시 국가 안보와 기술 주도권 측면에서 심사숙고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도 후보자 지명 전까지는 반출에 긍정적이었지만, 청문회를 앞두고 신중론으로 선회했다. 그는 “고정밀 지도 데이터를 해외 서버로 반출하는 것은 관광객 편의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라고 밝혔다.

장관들의 신중한 태도만으로는 부족하다. 구글은 이미 빠니보틀 등 인기 유튜버를 앞세워 여론전을 벌이고 있다. 동시에 미국 측 통상 압박은 갈수록 거세진다. 산업계는 정부가 통상 협상 과정에서 지도 반출을 조건부로라도 수용할까 우려한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정부와 여당이 지금까지 공식적으로 명확한 반대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국가 전략자산을 둘러싼 중대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당정이 침묵하거나 유보적 태도를 보이는 것은 사실상 ‘묵시적 수용’으로 해석될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올해 5월 “고정밀 지도 데이터는 미래 산업의 기반이며 성장의 핵심 자원이다”라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그 입장이 지금도 유효하다면, 이제는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줘야 할 때다.

통상 압력과 여론전이 본격화되는 지금, 정부와 여당은 확실히 선을 그어야 한다. 이 문제는 기술 협의가 아니다. 국익을 지키느냐, 넘기느냐의 선택지다.

변인호 기자
jubar@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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