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IT 환경은 ‘가상화(Virtualization)’라는 근본적인 변화를 맞아 왔다. 하나의 물리적 서버에 있는 자원을 여러 개의 분리된 ‘가상 머신’에 원하는 대로 할당할 수 있는 가상화 기술은 기업 IT 인프라 전반의 비효율성을 크게 바꿨다. 이제 ‘가상 머신’의 성능은 물리적 시스템의 성능에 전혀 손색 없을 정도고, 편리함과 유연성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졌다. 클라우드 컴퓨팅과 ‘서비스형 인프라(IaaS)’ 또한 이 ‘가상화’ 없이는 성립되지 않는다.
지금까지 기업용 가상화 환경에서 가장 두각을 나타내는 기업은 ‘VM웨어(VMware)’였다. 특히 VM웨어의 VCF(VMware Cloud Foundation)는 프라이빗 클라우드 구현에 필요한 모든 기술들을 갖춰 실질적인 업계 표준으로 다뤄진다. 하지만 브로드컴(Broadcom)이 지난 2022년 VM웨어를 인수하기로 발표, 2023년 인수를 마무리한 후 변경된 정책을 발표하면서 시장에는 파장이 예상된 바 있다. 이후 1년여가 지난 지금 시점에서도 여전히 시장의 변화 가능성은 남아 있다는 평이다.
대형 고객 중심의 전략, 변화의 핵심은 ‘라이선스 모델’
브로드컴은 지난 2022년 VM웨어를 610억달러(약 85조3634억원)에 인수했다. 인수 과정은 2023년 11월에 마무리했다. 지금까지 반도체 ‘하드웨어’ 중심이던 브로드컴은 이 VM웨어 인수를 통해 기업용 소프트웨어 시장으로 진출하는 계기를 만들었다는 평이다. 인수 금액도 컸고, 당시 브로드컴의 의욕도 컸다. 브로드컴은 VM웨어를 브로드컴 브랜드에 흡수하기보다는 ‘VM웨어 by 브로드컴’으로 여전히 브랜드를 남겨 뒀다.
하지만 브로드컴의 인수 이후 VM웨어의 전략에는 몇 가지 뚜렷한 변화가 있었다. 먼저, 제품 판매 전략이 크게 바뀌었다. VM웨어는 브로드컴 인수 이후 판매되는 제품, 서비스 구성을 크게 줄여 단순화했다. 구독형 모델을 중심으로 개편해 영구 라이선스와 유지보수 서비스 갱신 등의 판매를 종료했다. 기존 영구 라이선스를 가진 고객들에 대한 유지보수 서비스 갱신도 제공되지 않게 됐다. 솔루션 중 일부만 사용하는 구성도 선택할 수 없게 됐고, 라이선스 기준도 프로세서 코어당 요금제로 전환했다. 구입 가능한 최소 수량도 늘려 진입 가격대도 높아졌다.
업계에서는 이런 변화에 대해 기존에 VM웨어를 사용하던 고객들 중 상당수가 비용 등의 문제로 VM웨어 대신 대안을 찾아 교체하려는 움직임이 생길 것으로 예상한 바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이러한 예상은 빗나가는 모습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현재 상황에 대해 “대형 고객들은 당장 전환에 나서지 않고 있다”고 평가한다. VM웨어 한국 지사의 인력 구성 또한 유지되고 있고, 파트너들의 매출 추이 또한 큰 변화가 나타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VM웨어의 정책 변화는 고객 유형에 따라 체감 충격이 다르게 전달되고 있다. 기존 대형 고객의 경우는 새로운 정책에 대한 충격 자체보다 대안 기술로의 이전에 대한 부담이 더 크게 느껴질 것으로 보인다. 기존의 계약 기간이 남아 있다면 한 번 정도는 더 갱신하면서 상황을 두고 본다는 움직임도 있다. 십수년간 사용해오면서 서버와 스토리지, 네트워크까지 모두 가상화된 환경은 일부분이 아무도 파악하지 못한 ‘블랙박스’화 되면서 전환이 매우 까다로운 것도 현실이다.
반면, 소규모 사용자들이라면 이러한 정책 변화가 큰 충격으로 다가올 수 있다. 기존에는 일부 솔루션만 최소한의 구성으로 영구 버전으로 도입해 최소한의 기술 지원 갱신 정도로 사용할 수 있었다면, 새로운 정책에서는 이러한 구성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른 체감 비용 인상은 이전 대비 크게는 수 배에 달하는 상황도 충분히 발생할 수 있다. 특히 VM웨어의 솔루션에서 제공되는 기술 중 극히 일부만 활용하는 상황이라면 비용 대비 효과는 크게 떨어질 상황이다.
VM웨어의 정책 변화 이후 고객 이탈 사례가 크게 가시화되지 않는 데는 이러한 상황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들은 “정책 변화 이후로도 매출 등에서는 큰 변화가 없다”며 “대형 고객들의 움직임은 크지 않고, 작은 고객들의 경우 움직임이 수치로 보이지 않을 것”이라 평가한다. 경쟁 관계에 있는 업체의 관계자들도 “기대는 하지만 아직 업계 내에서 주목할 만한 움직임은 없다”고 밝혔다.
기술 이동 힘든 이유, ‘완성도’와 ‘기술 종속성’
급격한 정책 변화에도 불구하고 기존 VM웨어 환경을 사용하는 많은 기업들이 사용을 지속하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꼽힌다. 가장 큰 이유는 ‘검증된 신뢰성’이다. 이미 십수 년간 기업 환경에서 검증된 익숙한 환경이며, 대안들과 비교해 기능과 성능 모두에서 만족할 수준이다. 기업 환경에서의 가용성 극대화를 위한 실시간 가상머신 재배치 기능 ‘v모션(vMotion)’ 등의 몇몇 기능도 VM웨어 환경을 선택하는 중요한 이유로 꼽는다. 대안들과 비교하면 이러한 기능의 완성도는 인프라의 안정성 근간에 영향을 크게 미칠 부분이다.
이러한 기술적인 차이는 대안 기술로의 이동에 있어 ‘기술 종속성’으로 나타난다. 가상화 플랫폼 간 사용하는 기술과 데이터 형식이 모두 다른 만큼, 이를 완벽히 다른 기술 기반으로 전환하는 것은 단순히 ‘이미지 변환’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다. 여기에 운영 중인 가상머신들 중 관리 영역을 벗어나는 것들이 있다면 문제는 훨씬 복잡해진다.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알 수 없는 가상머신과 네트워크 연결 구성들까지 완벽하게 전환되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전환 이후 어떤 상황이 발생할 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다양한 기술을 사용하는 대기업 고객의 입장에서는 기술을 옮기는 것이 유지보다 더 부담스러울 상황이다. 복잡한 기능을 활용하는 대규모 환경에서의 실질적 비용 차이가 이러한 부담을 넘어 기술 전환을 결정할 만큼은 아니라는 점도 기존의 VM웨어 환경을 유지하는 이유로 꼽힌다. 이러한 고민은 아직 금융권이 핵심 시스템에 메인프레임을 사용하고, 대기업 IT 환경에 여전히 오라클의 데이터베이스가 가장 많이 사용되는 이유와도 같은 맥락이다. 이러한 상황도 ‘대안’이 있지만 이들이 사용자에게 ‘확신’을 주기엔 부족한 상황인 것이다.
하지만 중장기적으로는 대기업 고객군도 상황을 보면서 기술 전환을 고려할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표면적으로는 드러나지 않지만, 몇몇 대기업은 내부적으로 꾸준히 기술 전환에 대한 검토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전환 검토 과정에서 가장 까다로운 부분은 네트워크 연결이 꼽힌다. 이러한 점은 비단 타 가상화 플랫폼으로의 전환 뿐만 아니라 퍼블릭, 하이브리드 클라우드로의 전환에서도 피할 수 없는 문제다.
기업들이 당장은 움직이지 않더라도 중장기적으로는 변화를 모색하는 또 다른 이유로는 지금까지 브로드컴이 인수한 기업들의 이후 행적에 대한 부분도 꼽힌다. 지금까지 브로드컴은 제법 많은 기업을 인수하면서 규모를 키웠지만, 인수 이후 행보가 긍정적이지는 않았다. 브로드컴이 2018년 인수한 CA테크놀로지스나 2019년 인수한 시만텍 모두 현재는 국내 지사가 철수하는 등 진통을 겪은 바 있다. VM웨어의 경우도 당장은 아니지만, 일부에서는 향후 지원 관련 문제를 우려하기도 한다. 이에 따라 기술 역량이 뒷받침되는 일부는 비용 지출이 없는 오픈소스 커뮤니티 기반 솔루션으로 이동하거나 브로드컴을 통한 지원이 아닌 리미니스트리트 등 서트파티 유지보수 서비스를 활용하려는 움직임도 제기되고 있다.
권용만 기자
yongman.kwon@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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