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50대 희망퇴직이 늘었다는데, 20대 일자리는 더 바늘구멍이네요.”

2년째 대기업 입사를 준비 중인 한 청년의 하소연이다.

주요 기업이 고연차·고임금 인력을 대상으로 대규모 희망퇴직을 실시하고 있지만, 그 빈자리가 청년 일자리로 곧장 이어지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인력 구조조정은 기업 전반에서 상시화됐다. 반도체, 배터리 등 제조업 분야를 포함한 채용문은 갈수록 좁아진다. 여기에 인공지능(AI)과 자동화 전환은 빨라졌고, 중국의 저가 공세와 트럼프 정부의 관세 정책 등 대외 불확실성은 기업의 고용 여건을 더욱 악화시킨다.

AI 전환과 대외 변수는 분명 고용 여건에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이를 이유로 신입 채용을 축소하는 것은 구조조정 이후 인력 공백을 장기적으로 방치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실제 한국경제인협회가 매출액 500대 기업 가운데 121개사를 조사한 결과, 응답 기업의 62.8%는 올해 하반기 신규 채용 계획이 ‘없거나 미정’이라고 답했다. 전년 같은 조사보다 5.2%포인트 증가한 수치다. 기업이 스스로 청년 취업 문을 걸어 잠근 셈이다.

4대 그룹 가운데 채용 기조를 유지한 곳은 삼성뿐이다. 삼성은 삼성전자를 비롯해 삼성SDI, 삼성전기, 삼성디스플레이 등 주요 계열사에서 매년 공개채용을 진행하고 있다. 청년 인재 확보를 미래 성장동력으로 삼겠다는 방침이다. 그 결과 삼성전자의 국내 직원 수는 2019년 말 10만5000명에서 올해 6월 말 기준 12만9000명으로 23%쯤 증가했다.

반면 SK, 현대차, LG 등은 코로나 팬데믹 이후 정기 대졸 공채를 폐지했다. 대신 수시·경력직 중심 채용으로 전환했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와 올해 모두 사상 최대 실적을 올리고 역대 최대 성과급을 지급했지만, 취준생에게는 여전히 ‘바늘구멍’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LG전자, LG디스플레이, LG화학, LG유플러스 등 LG 계열사들은 희망퇴직을 실시하면서도 신입보다는 해외 우수 인재 확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고급 인력 채용도 주춤하다. 첨단 산업의 대표 격인 배터리 분야조차 일자리 기근이 심각하다는 목소리가 잇따른다. 올해 대학 졸업 후 석사 과정을 수료한 일부 학생들은 채용 문턱이 높아지자 연구실에 남기로 했다. 이들은 학내 연구 보조원이나 조교 등 역할을 수행하며 당분간 졸업을 미루는 선택을 하고 있다.

‘경력 같은 신입’을 요구하는 기업의 고용 철학도 청년 일자리 감소의 한 요인이다. 채용 플랫폼 ‘캐치’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이직을 시도한 경력자 8371명 가운데 약 26%인 2193명이 신입 포지션에 지원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른바 ‘중고 신입’이 늘어난 셈이다. 신입에게 돌아가야 할 기회가 경력직에 흡수되는 왜곡된 고용 구조가 되는 것이다.

나무는 뿌리가 깊어야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다. 조직의 뿌리는 경험 많은 리더가 아니라, 경험을 쌓아가는 인재풀에서 자라난다. 신입 채용은 그 뿌리를 기르는 과정이다. 인건비 절감을 명분으로 청년 채용을 줄이는 것은 책임 회피에 불과하다. 구조조정을 통해 확보한 효율을 청년 채용으로 되돌리지 않는다면, 기업에는 단기 성과만 남고 미래 경쟁력은 사라질 수 있다. 고용은 단기 수익을 갉아먹는 비용이 아니라, 기업 지속가능성을 떠받치는 투자이자 사회적 책임이다.

이선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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