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의 인공지능(AI) ‘하이퍼클로바X’를 상대로 수백억 원대 저작권 침해 소송이 잇따르는 가운데 AI 주무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관련 제도 정비에 손을 놓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앞서 중소벤처기업부는 올해 9월 AI 학습 과정에서 발생하는 데이터 저작권 침해에 대해 중소기업을 면책하는 법안을 추진하겠다고 나섰는데, 과기정통부가 방관하는 사이 중기부가 먼저 움직였다는 평가다.
13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최수진 의원(국민의힘)은 “AI 학습 관련 저작권 침해 소송이 급증하지만 주무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여전히 원론적인 입장만 되풀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한국방송협회(KBS·MBC·SBS)와 한국신문협회는 올해 들어 네이버와 네이버클라우드를 상대로 AI 학습 관련 저작권 침해 소송을 제기했다.
한국방송협회는 네이버 AI가 대규모 데이터를 학습하는 과정에서 국내 방송사와 언론사가 제작한 뉴스 콘텐츠를 무단으로 사용해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초래했다고 주장했다. 협회는 또 네이버가 “AI가 스스로 뉴스 콘텐츠를 학습했다”고 답변한 점을 문제 삼았다. 최 의원은 “네이버가 뉴스 콘텐츠에 대한 이용 허락을 받은 사실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고 말했다.
한국신문협회도 같은 입장이다. 협회는 올해 4월 공정거래위원회에 네이버를 신고하며 “네이버가 시장지배적 지위와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일방적으로 뉴스 데이터를 AI 개발·운영에 사용했다”고 주장했다. 협회는 또 “네이버의 AI 브리핑 등 생성형 AI 기반 검색 서비스가 뉴스 기사의 주요 내용을 무단으로 복제·요약·재구성해 언론사의 사업 활동을 침해하고 있다”고 밝혔다.
해외에서도 유사한 분쟁이 이어지고 있다. 챗GPT 개발사 오픈AI와 뉴욕타임스, 클로드 개발사 앤트로픽과 저작권자 간에도 생성형 AI의 저작권 침해를 둘러싼 소송이 진행 중이다. 국내 역시 네이버를 시작으로 AI 저작권 관련 분쟁이 확산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업계는 현행 제도가 개선되지 않으면 대부분의 AI 기업이 저작권법을 위반할 수밖에 없다고 우려한다. 최 의원이 과기정통부의 소극적 대응을 비판하는 이유다.
그러나 과기정통부는 최수진 의원실에 보낸 답변에서 “저작권 문제는 권리자의 보호와 AI 산업 혁신을 위한 활용 간 균형 있는 검토가 필요한 사안이다”라며 “문화체육관광부, 중소벤처기업부 등 관계 부처와 협력해 합리적인 대안을 마련하기 위한 정책 노력을 지속하겠다”고 밝혔다.
최 의원은 “세계 주요국 정부가 AI 산업 발전을 위해 저작권 규제와 가이드라인을 선제적으로 마련하고 있다”며 “AI 저작권 분쟁이 현실화되고 있는데도 과기정통부는 제도 개선과 가이드라인 마련을 수수방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AI 학습과 서비스 개발을 위해 저작권 관련 면책 요건을 정비하고, 저작권자에게 적절한 보상 체계를 마련하는 등 국회와 정부가 적극적으로 제도 개선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변인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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