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학개미’ 투자 움직임에 환율이 요동치고 있다. 해외주식 투자액을 늘리면 환율이 오르고 투자액을 줄이면 환율이 내려가는 양상이다. 국내로 들어오는 돈보다 해외로 빠져나가는 돈이 늘어나니 원화가치가 곤두박질치는 상황이다.
20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이달 들어 18일까지 국내 투자자들이 순매수한 해외주식 결제금액은 37억8341만달러(약 5조5500억원)로 집계됐다. 올해 전체로 보면 276억4965만달러로 한화 40조5000억원이 넘는다. 현재까지 금액만 놓고 봐도 지난해 순매수 규모 101억183만달러보다 173% 많다.
반면 들어온 돈은 턱없이 부족했다. 18일까지 연초 이후 외국인은 국내주식을 5조5953억원 순매도했다. 5월부터 순매수로 전환하며 국내주식을 사들였으나 이달 ‘팔자’로 다시 방향을 틀었다.
국내 투자자의 해외주식 순매수액과 외국인의 국내주식 순매수액을 합치면 약 46조원 적자다. 지난해 연간 기준 약 17조원 적자에서 더 벌어졌다. 지난해 국내 투자자는 해외주식을 101억183만달러 순매수했고 외국인도 국내주식을 2조7464억원 사들였다.
문제는 서학개미의 해외주식 투자 확대가 환율 상승을 촉진할 수 있다는 점이다. 증권사 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MTS)을 통해 해외주식에 투자할 때 증권사는 원화를 팔고 달러를 사서 매매를 진행하는데 이때 달러 수요가 늘어나 원화 가치는 하방(환율 상승) 압력을 받게 된다.
실제로 1월 국내 투자자의 해외주식 순매수액이 전월 8억5505만달러에서 40억5063만달러로 급증하면서 환율은 1434.42원(서울외국환중개 월평균 기준)에서 1455.79원 치솟았다.
반면 5월 해외주식 투자가 순매도로 전환할 땐 환율은 1444.31원(4월)에서 1394.49원으로 내려갔다. 5월부터 8월까지 국내 투자자의 해외주식 순매수액이 10억달러를 밑돌 때도 환율은 1300선에서 움직였다. 그러다가 9월 해외주식 순매수액이 27억달러를 넘어서자 9월 말 환율은 1400원을 돌파했고 해외주식 순매수 최대치를 올린 10월엔 환율이 월평균 1423.36원에 이르렀다. 18일 현재 11월 평균 환율은 1450.86원(월중 최고치 1469.50원)에 이르렀다.
국내 투자자들이 미국 주식 투자에 적극 나서는 건 중장기적으로 우상향할 것이란 기대로 풀이된다. 미국 대표 주가지수인 나스닥은 18일 기준 최근 20년간 907.3%, 10년간 342%, 5년간 90.1% 상승한 반면 코스피는 20년간 210.7%, 10년간 101.4%, 5년간 55.3% 오르는 데 그쳤다. 이렇다 보니 올해 들어 코스피 등락률(64.8%)이 나스닥(16.2%)을 약 50%포인트 웃돌았음에도 개인투자자는 연초 이후 코스피 17조3699억원 팔고 미국 주식을 사들였다.
단일 종목 2배 및 3배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가 국내에 없는 점도 투자자의 해외 이탈을 촉진하기 충분했다. 올해 국내 투자자들이 순매수한 상위 해외종목 50개 중 단일 종목 2배 및 3배 레버리지 ETF는 9개에 달했다. 테슬라의 하루 주가 수익률을 2배 따르는 ‘디렉시온 데일리 테슬라 불 2배 ETF’(순매수 6억7237만달러)가 대표적이다. 순매수 1위 종목은 비트코인 채굴 및 이더리움 비축 회사인 비트마인이머전테크놀로지(11억8652만달러)였다.
이를 두고 투자자의 해외주식 투자 수요를 막을 수 없는 만큼 밸류업 프로그램 등을 통해 국내주식의 투자 매력도를 높여 ‘해외 쏠림’을 완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이희은 한은 해외투자분석팀 과장은 “해외주식 투자를 막을 수는 없고 대외 건전성 강화라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어 우회적으로 국내투자 활성화를 통해 어느 정도 적정 수준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며 “일본의 경우 밸류업 프로그램을 시행한 이후 외국인 자금의 대규모 유입세로 NFA(순대외금융자산) 증가세가 둔화한 바 있는데 이같이 장기적으로 국내주식 활성화를 유도할 수 있는 기업가치 제고 및 배당 확대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미국에 준하는 제도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김한수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미국 등 주요국과 비교해 해외주식을 직접 투자하는 데 드는 비용이 저렴하고 ETF 등 간접 투자 수단과 비교해서도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아 해외로 자꾸 가게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2배 레버리지 ETF 등 국내에서 거래되지 못하는 상품을 선호하는 개인들이 해외로 떠나고 있기도 해서 다른 나라와 형평성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승준 기자
sjyoon@chosunbiz.com
- 中증시 활황에 중학개미 웃음꽃… 서학개미 ‘씁쓸’ 동학개미 ‘통곡’
- 韓 증시 손털고, 美 유턴한 개미들… 왜?
- '빅테크' 탈출 나선 서학개미… 코인 관련株 집중 매수
- 여름에 더 뜨겁다… 시중은행 "MZ·서학개미 잡아라"
- '국장 복귀는 지능순?'… 서학개미, 두 달 연속 美 증시 탈출
- 美 매파 발언에 코스피 4% 급락… 신용융자 올라탄 개미들 ‘덜덜’
- 3분기 ‘빚투’ 이자이익 사상 최대… 미래·키움·삼성·NH, 절반 싹쓸이
- 3개월새 25% 하락 비트코인… 트럼프 일가 재산 10억弗 줄어
- “K컬처, 글로벌 소비 핵심… AI 투자 대안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