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의 혁신 엔진이 멈추고 있다. 아이폰 에어 판매 부진과 AI 통합 지연. XR 경쟁력 약화와 핵심 인재 이탈까지 겹치면서 팀 쿡 체제가 중대한 전환점에 놓였다. 업계는 이번 위기를 일시적 흔들림이 아니라 수년간 누적된 구조적 문제의 결과로 보고 있다.
혁신 부재…AI 지연에 인재이탈 속속
IT 업계는 애플 창업주 스티브 잡스 이후 애플이 더 이상 ‘세상을 뒤흔드는 혁신’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특히 AI 전환 과정에서의 부진은 이러한 평가를 더욱 가중시키고 있다.
구글·마이크로소프트(MS)·오픈AI가 생성형 AI 경쟁을 주도하는 동안 애플은 ‘온디바이스 AI’라는 기존 전략을 고수하며 늦은 대응을 했고, AI 음성비서 시리의 대규모언어모델(LLM) 통합도 반복적으로 지연됐다.
2024년 WWDC(세계개발자회의)에서 공개한 ‘애플 인텔리전스’는 기대를 모았지만 정작 주요 기능은 올해로 출시가 늦춰졌고, 공개된 AI(실시간 번역) 기능 역시 경쟁사 대비 차별성이 미미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일각에선 애플이 폐쇄적 생태계를 유지하려다 혁신 타이밍을 놓쳤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존 스컬리 전 애플 CEO는 지난달 미국 뉴욕에서 열린 제타 라이브 콘퍼런스에서 “AI 경쟁에서 애플은 오픈AI·구글·아마존·메타보다 뒤처져 있다”며 “AI는 애플의 강점이 아니며, 앱 중심 시대에서 에이전트 중심 시대로 전환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최근 잇따르는 인재이탈도 애플 위기설을 뒷받침하고 있다. 8월에만 애플 내 AI 연구원 12명이 잇따라 회사를 떠났다. 특히 젠모지와 온디바이스 요약 기능 등 애플 인텔리전스 핵심을 이끌던 루오밍 팡의 메타 이직은 내부적으로 큰 충격으로 받아들여졌다.
업계에서는 이를 애플의 미래 전략 신뢰가 흔들리고 있다는 신호로 해석한다. 여기에 최근 ‘아이폰 에어’ 개발에 참여했던 핵심 디자이너, 수년간 디자인 조직을 이끌어온 제프 윌리엄스 COO까지 회사를 떠나면서 핵심 조직의 균열이 현실화되고 있다.
업계에선 인재 이탈의 배경으로 조직 경직성을 지적한다. 기능별 조직 구조로 인해 기획·디자인·개발 간 조율이 느리고, 원격·하이브리드 근무 허용이 제한적이라는 지적은 오래전부터 나왔다. 일부 전·현직 임직원은 “위험을 회피하는 폐쇄적 문화가 새로운 시도를 어렵게 하고 있다”는 증언을 내놓기도 했다.
“안정적 경영 유지 방식 넘어 혁신 리더십 복원해야”
이런 상황에서 최근 팀 쿡 CEO의 거취 변화와 관련한 보도가 쏟아진다.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외신에 따르면 애플 이사회와 경영진은 팀 쿡이 이르면 2026년 자리에서 물러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차기 CEO 선임 프로세스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1년 취임 이후 14년 넘게 애플을 이끈 쿡 CEO는 올해 만 65세로, 미국 CEO 평균 은퇴 시점을 이미 넘겼다.
이창민 한양대 교수는 “팀 쿡 CEO는 이미 평균 CEO 은퇴 연령을 넘어섰고, 애플은 기술·경영 양 측면에서 대대적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이라며 “애플 내부에서도 기술적 리더십을 갖춘 후임 체제를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어 “팀 쿡의 관리형 리더십을 넘어 스티브 잡스식 혁신 리더십을 복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황용식 세종대 교수는 현재의 애플이 과거 성공에 안주하다 쇠퇴한 소니를 연상시킨다고 지적했다.
황 교수는 “스티브 잡스가 구축한 혁신의 유산 위에서 애플은 오랫동안 브랜드 가치와 안정적 운영에 의존해 왔지만, 팀 쿡 CEO는 스스로의 색깔과 새로운 혁신 성과는 뚜렷하게 남기지 못했다”며 “과거 소니가 과거 성공에 도취해 변화에 둔감해져 시장 경쟁력을 잃었던 전례가 있듯이 애플도 더이상 브랜드 가치에 의존한 안정적 경영만 추구할 게 아닌 계속해서 쇄신하고 변화하는 혁신을 보여줘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애플 역시 소니와 같은 길을 걸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선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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