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컬처가 세계적 관심을 받는 가운데 국내 콘텐츠 산업은 2024년 156조원의 연매출을 기록했다. 중요한 건 콘텐츠 산업 분야 중 음악(K팝)·게임·만화만 성장세를 유지했다는 점이다. 한국이 종주국인 웹툰(만화)을 제외하면 음악과 게임처럼 글로벌화가 이뤄진 산업만 성장했다.

이런 글로벌화는 우리 기업이 해외에 투자하거나 해외 기업이 우리 기업에 투자하는 게 원활하게 이뤄지는 것을 말한다. 방송 등 다른 콘텐츠 산업 분야는 한국인이 한국 자본으로 한국에서 만들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좀처럼 벗지 못해 글로벌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모양새다.

/ 챗GPT 생성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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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한국콘텐츠진흥원 2024년 연간 콘텐츠 산업 동향분석 보고서에 의하면 2024년 K콘텐츠 산업의 전체 매출은 전년 대비 6.9% 증가한 156조원이다. 이중 게임 산업 매출은 전년 대비 5.6% 증가한 24조2476억원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7.3% 성장한 음악 산업의 연매출은 13조5515억원이다. 만화 산업 연매출은 13.4% 늘어난 3조1064억원으로 집계됐다. 다른 산업은 전년 대비 매출 규모가 전반적으로 감소했다.

음악·게임은 이미 국적 초월

전문가들은 음악·게임이 성장세를 유지한 배경으로 글로벌화를 꼽는다. 이는 콘텐츠 흥행 성과와 별개 결과다. 지난해 드라마 분야만 보면 ‘오징어게임 시즌2’,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눈물의 여왕’, ‘선재 업고 튀어’ 등의 드라마가 글로벌 성과를 냈다. 하지만 전체 산업이 성장하려면 산업 전반에 자금이 유통되며 평균 성적이 잘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 K팝을 중심으로 성장하는 음악은 이미 한국인 없는 K팝 아이돌이 활동한다. 디알뮤직 소속 걸그룹 ‘블랙스완’은 한국계 멤버 없이 한국 노래로 한국에서 활동하는 최초의 전원 외국인 걸그룹이다. JYP엔터테인먼트가 일본 소니뮤직엔터테인먼트와 진행한 오디션 ‘니지 프로젝트’로 데뷔한 걸그룹 ‘니쥬’는 전원 일본인이다. 하이브가 미국의 주요 음반 유통사 게펜 레코드와 진행한 오디션 ‘더 데뷔: 드림아카데미’로 데뷔한 걸그룹 ‘캣츠아이’는 미국이 주 활동지역이다. 캣츠아이는 한국 국적을 가진 멤버가 1명이다.

글로벌화 된 게임도 상황은 비슷하다. 펄어비스는 2018년 아이슬란드 게임사 CCP게임즈를 인수하고 CCP게임즈의 ‘이브 온라인’을 자사 포트폴리오에 추가했다. 카카오게임즈는 뉴질랜드 게임사 그라인딩 게임즈가 개발한 ‘패스 오브 엑자일’ 시리즈를 국내 퍼블리싱한다. 컴투스는 중국 넷이즈에서 개발한 ‘프로스트펑크: 비욘드 더 아이스’를 글로벌에 퍼블리싱한다. 한국 게임사라고 게임만 서비스하는 게 아니다.

글로벌 개방하자 들어오는 자본

글로벌화가 진행된 산업은 투자도 원활히 이뤄진다. 중국 텐센트 뮤직은 올해 5월 28일 하이브가 보유한 SM엔터테인먼트 지분을 인수했다. 텐센트는 카카오, 카카오엔터테인먼트, SM엔터테인먼트의 주요 주주다. 게임업계는 더 활발하게 글로벌과 교류한다.

넷마블은 2020년 코웨이를 인수한 것에 이어 2021년 글로벌 3위 소셜 카지노 게임사 스핀엑스를 인수했다. 스핀엑스 인수대금만 2조5000억원쯤이다. 크래프톤은 올해 인도 게임사 노틸러스모바일을 202억원쯤에, 일본의 3대 광고회사로 꼽히는 ADK그룹을 7103억원쯤에 인수했다.

우리 기업만 해외로 나가는 게 아니다. 중국 텐센트는 크래프톤, 넷마블, 시프트업, 카카오게임즈 등 국내 주요 게임사 지분을 보유한 주요 주주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 / 넷플릭스
케이팝 데몬 헌터스. / 넷플릭스

글로벌 성과 노리지만 산업은 내수용?

글로벌 시장과 상호 교류하는 국내 콘텐츠 분야는 결과적으로 기획·제작과 유통 전 과정에서 글로벌 자본이 함께 한다. 반면 방송·영상 분야는 이런 구조가 개방되어 있지 않은 곳으로 꼽힌다. 넷플릭스·디즈니 같은 해외 기업에 콘텐츠를 납품하는 대가로 투자받는 식이다. 여전히 한국 연출진이 한국 배우를 통해 만드는 콘텐츠라는 고정관념에 갇혀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확장 가능성을 업계가 가로막는다는 것이다.

최근 넷플릭스 43개국 1위를 기록한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일본의 소니 픽처스 애니메이션이 한국에서 태어나 캐나다에서 자란 매기 강 감독을 기용해 K팝 아이돌이 퇴마하는 내용을 다룬다. 국산 애니메이션이 아니라도 한국 문화를 다뤄 글로벌에서 흥행할 수 있다는 사례가 생긴 셈이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글로벌 전역에서 K컬처에 관심이 높아지는 시점에 국내 콘텐츠 업계가 산업 구조를 개방해 글로벌화를 이뤄야 성장세를 유지할 수 있다고 봤다.

복수의 방송업계 전문가들은 “콘텐츠 산업은 많이 투자해야 콘텐츠 수가 늘고 그 안에서 흥행 콘텐츠가 나타나면서 생태계가 성장한다”며 “만약 제작이 계속 국내 중심으로만 이뤄지면 글로벌에서 국내 콘텐츠 산업에 투자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김용희 선문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역시 지난해 IT조선과 인터뷰에서 “더 많은 외국기업이 넷플릭스처럼 한국에 진출해 더 많이 투자하도록 유도하면서 국내 콘텐츠 생태계에 락인(잠금)되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변인호 기자
jubar@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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