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전기차 시장에서 LFP(리튬인산철) 배터리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그동안 삼원계(NCM) 배터리에 집중해온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등 국내 주요 배터리 기업도 뒤늦게 LFP 시장 대응에 나섰지만 이미 시장을 장악한 중국 업체와 기술 격차는 크다. 여기에 완성차 업체까지 LFP 배터리 생산에 뛰어들면서 국내 배터리 3사가 단기간에 경쟁력을 확보하기는 쉽지 않다는 전망이 나온다.
LG엔솔·삼성SDI, LFP 생산라인 전환 및 도입 검토
21일 배터리 업계에 따르면 LG에너지솔루션은 미국 제너럴모터스(GM)와 합작한 테네시주 공장의 생산라인 일부를 LFP 전용으로 전환한다. 해당 공장은 당초 삼원계 배터리 생산을 염두에 두고 설계됐으나 글로벌 전기차 시장 성장 둔화와 LFP 수요 확대를 이유로 2027년 말부터는 LFP 배터리를 대량 생산한다는 계획이다. 또 해당 공장에서는 기존 파우치형, 원통형 외에 보급형 전기차 시장 공략에 유리한 각형 배터리도 개발할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SDI도 GM과 추진 중인 미국 인디애나 합작공장에서 LFP 생산라인 도입을 검토 중이다. 기존 삼원계 중심 생산 계획에 변화를 주는 것으로, 2027년 양산을 목표로 고객사들과 협의를 진행 중이다. 삼성SDI는 올해 초 실적발표 콘퍼런스콜에서 "동종업체와 차별화할 수 있는 LFP 배터리 플랫폼을 이미 완성했다"고 밝혔다.
SK온은 LFP 배터리 개발은 완료했으나 구체적인 설비 전환 계획은 내놓지 않았다. 다만 수주 성과에 따라 생산 투자에 나설 가능성은 열려 있다. 이석희 대표는 2024년 3월 "2026년부터 LFP 양산을 시작할 계획"이라고 언급한 적 있다.
"시장 선점한 中과 경쟁하려면 가격 경쟁력 확보해야"
한국 기업들이 이제 막 생산 체제 전환을 추진하는 반면, 중국 기업은 이미 대량 양산 체제를 갖추고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CATL, BYD, EVE에너지 등 중국 업체는 저렴한 LFP 배터리를 앞세워 자국 시장을 넘어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과의 공급 계약을 확대하며 점유율을 빠르게 높이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 자료를 보면 올해 1~5월 중국 시장을 제외한 세계 배터리 시장 점유율 상위 10곳 가운데 5곳이 중국업체로 나타났다. 특히 CATL은 중국 완성차 업체뿐 아니라 테슬라, BMW, 벤츠, 폭스바겐 등 여러 글로벌 완성차에 배터리를 공급하며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LFP 배터리는 삼원계 대비 가격이 약 30% 저렴하고 열 안정성이 뛰어난 것이 강점이다. 중국은 정부 보조금을 바탕으로 LFP 생산량을 확대했다. 에너지 밀도 개선·수명 연장·안전성 강화 등 기술 약점도 지속 보완 중이다.
전문가들은 국내 업체들이 단순한 LFP 생산을 넘어 고유의 기술력 확보나 원가 경쟁력을 바탕으로 한 차별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조철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성능 면에서는 삼원계 배터리가 더 우수하지만, 경기 불황과 각국 보조금 축소가 맞물리며 가격 경쟁력이 높은 LFP 배터리가 완성차의 주목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아직 대형 고급차에는 삼원계 배터리를 선호하지만, 가격이 중요한 경차나 소형차에는 LFP 배터리 채택이 늘고 있다"며 "삼원계 배터리 가격이 하락하거나 새로운 저가 배터리가 등장하지 않는 한 LFP 배터리의 비중은 지속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배터리 업체들이 단순히 중국과 비슷한 수준의 LFP 배터리를 생산하는 것만으로는 경쟁력을 갖추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완성차업체들까지 LFP 배터리 연구개발을 병행하고 있어 경쟁은 더 치열해졌다.
조 선임연구위원은 "국내 배터리 기업이 LFP 시장에서 성공하려면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거나, 중국 기업을 뛰어넘는 성능으로 차별화 포인트를 만들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이선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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