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엔비디아의 중국향 인공지능(AI) 반도체 칩 수출 제한 조치를 일부 완화했다. 핵심 기술 유출은 차단하면서도 중국의 기술 자립을 지연시키기 위한 전략적 조치로 해석된다.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부 장관은 15일(현지시각) CNBC 인터뷰에서 “중국에 최고 사양의 칩은 물론, 두 번째·세 번째 수준 칩도 판매하지 않는다”며 “이번에 허용한 것은 네 번째 수준 칩이다”라고 밝혔다.
앞서 엔비디아는 14일 성명을 통해 “미국 정부가 H20 칩의 수출을 허가할 뜻을 밝혔다”며 “곧 중국 내 판매를 재개하겠다”고 발표했다. H20은 2022년 미 정부의 수출 통제 이후 설계 사양을 낮춰 개발된 제품이다. GPU 코어 수와 메모리 대역폭 등이 고사양 칩인 H100, H200과 비교해 제한돼 있다.
미국 정부는 이번 조치를 단순한 수출 완화로 보지 않는다. 러트닉 장관은 “H20 판매는 희토류 자석 공급 계약과 연계돼 있으며, 미국 기술 스택을 중국에 고착시키기 위한 전략적 판단이다”라고 강조했다. 중국이 독자적인 기술 생태계를 구축하지 못하도록 기술 종속 상태를 유지하려는 의도다.
이 같은 전략에 엔비디아도 동조하는 입장이다. 젠슨 황 CEO는 최근 “중국에 일정 수준의 칩을 판매해야 이들이 자체 인프라에 투자하지 않게 된다”고 밝혔다. 그는 또 “중국군은 엔비디아 칩을 사용하지 않으며, 화웨이는 이미 경쟁자다”라고 선을 그었다.
이번 수출 재개는 엔비디아에 실질적인 반전 기회를 제공한다. 황 CEO는 지난 4월 H20에 대한 수출 금지 조치를 중국 시장을 사실상 봉쇄한 결정으로 평가했다. 당시 엔비디아는 해당 분기 H20 출하 중단으로 80억 달러 규모의 매출 손실을 입었다고 발표했다.
CNBC는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워싱턴에서 젠슨 황 CEO와 면담한 이후, 행정부가 관련 정책을 일부 수정했다고 보도했다. 러트닉 장관은 “중국 개발자들이 미국 기술 스택에 중독되도록 만들어야 한다”며 이번 결정을 ‘전략적 선택’으로 규정했다.
한편, 엔비디아는 블랙웰(Blackwell) 아키텍처 기반의 최신 AI 칩을 연간 주기로 출시 중이다. 고성능 라인업은 GB200, B100, B200 등이며, 주로 미국 내 클라우드 및 데이터센터 시장을 대상으로 공급된다. 차세대 제품인 ‘블랙웰 울트라’는 현재 초기 공급 단계에 있으며, 2026년부터 본격 양산될 예정이다. 이후 2027년에는 코드명 ‘베라 루빈(Vera Rubin)’으로 불리는 후속 칩도 출시될 계획이다.
이광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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