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가 커머스 사업을 강화하며 C2C(개인 간 거래)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단순한 중고 거래를 넘어, 네이버의 방대한 사용자 커뮤니티와 데이터를 활용해 새로운 생태계를 구축하려는 시도다. IT조선은 네이버의 C2C 전략이 시장에 어떤 파급 효과를 가져올지 심층 분석한다. [편집자주]
네이버가 미국 포시마크, 스페인 왈라팝, 일본 소다, 한국 크림 등 세계 주요 중고거래(C2C) 플랫폼을 손에 넣었다. 이는 단순한 글로벌 사업 확장이 아니다. 개인 간 거래에서 발생하는 롱테일 데이터를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 즉 다양한 물품, 다양한 사용자가 거래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정형 데이터로 인공지능(AI)을 고도화하려는 전략인 셈이다.
네이버는 2023년 북미 최대 패션 C2C 플랫폼 포시마크, 일본의 한정판 거래 플랫폼 스니커덩크(소다)를 인수했다. 2025년에는 스페인 최대 C2C 플랫폼 왈라팝 경영권을 확보하며 C2C 플랫폼에만 2조원 넘는 자금을 투입했다.
이로써 네이버는 한국에서 운영 중인 크림과 함께, 미국·유럽·일본·한국 등 글로벌 핵심 거점에 각기 다른 특성의 C2C 플랫폼을 보유하게 됐다. 포시마크는 패션, 왈라팝은 의류·가전·부동산, 크림은 명품, 소다는 한정판 스니커즈를 중심으로 거래가 이뤄진다. 거래 품목은 다르지만, 모두 ‘롱테일 데이터’를 축적하는 기반이라는 점에서 전략적 공통점이 있다.
‘롱테일 데이터’란 인기 제품 중심의 일반적인 쇼핑 데이터(헤드 데이터)와 달리, 소수 사례지만 고유한 조건과 맥락을 가진 구매 데이터를 뜻한다.
예컨대 ‘삼성전자 갤럭시북’은 검색량이 많은 대표 키워드로 숏테일(헤드) 데이터에 해당한다. 반면 ‘인텔 루나레이크 CPU를 탑재한 갤럭시북’처럼 비교적 드물지만 뚜렷한 취향과 조건이 반영된 검색은 롱테일에 해당한다.
C2C 플랫폼에서는 인기 브랜드의 인기 상품만 거래되는 게 아니다. 각 사용자가 갖는 개별 상황, 가격 조건, 거래 시점, 지역 맥락 등까지 반영된 '다양한 케이스'가 실거래로 축적된다.
최수연 네이버 대표가 “C2C는 롱테일 데이터를 확보하는 데 매우 유리한 구조다”라고 언급한 배경이다. 네이버는 전 세계에 흩어진 C2C 플랫폼에서 수집한 이질적이고 다양한 롱테일 데이터를 AI 학습에 활용할 계획이다. 이는 단순 상품 정보나 트렌드 분석을 넘어, 구매자 특성과 거래 맥락까지 포괄하는 고차원 데이터다.
일반적인 e커머스 데이터와 달리, C2C 거래 데이터는 가격 협상 과정, 거래자의 신뢰도, 특정 시기의 수요 트렌드, 지역별 인기 품목 등 정형화되기 어려운 조건을 담고 있다. 이처럼 다양성·복합성·현실성이 높은 비정형 거래 데이터는 AI 모델 학습의 핵심 자원이 된다. 헤드 데이터만 학습한 AI는 단순하고 예측 가능한 결과만 도출하는 반면, 롱테일 데이터를 많이 학습한 AI는 개인 맞춤형 추천, 가격 예측, 사기 거래 탐지 등에서 정교한 판단이 가능하다.
실제 네이버는 포시마크에 자사 AI 이미지 검색 기술을 접목한 ‘포시렌즈’를 적용했다. 포시렌즈는 사용자가 상품명을 모를 경우에도 이미지를 업로드하면 해당 상품 또는 유사 상품을 검색해준다. 단순 검색 기능을 넘어, 이용자가 어떤 이미지를 찾았는지, 어느 시점에 어느 지역에서 어떤 연령대가 어떤 조건으로 구매를 고려했는지 등의 데이터를 축적할 수 있다.
이는 네이버가 실시간 사용자 수요와 지역 트렌드, 구매 행동을 추적하고 예측하는 데 활용될 수 있다. 2025년 9월부터 네이버 카페에 도입될 ‘안전거래 솔루션’ 역시 동일한 데이터 수집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네이버의 입장은 일관됐다. 최수연 대표는 C2C 시장과 관련해 “사용자 간 커뮤니케이션이 활발히 일어나는 커뮤니티형 구조이자, 실제 상거래가 동시에 발생하는 플랫폼”이라고 말했다. 커뮤니티 데이터와 커머스 데이터가 동시다발적으로 축적되는 구조야말로 AI 생태계에 필요한 데이터 환경이라는 것이다.
네이버는 C2C 생태계 안에서 판매자와 창작자 육성까지도 연계 가능하다고 본다. 이는 네이버라는 플랫폼의 수직·수평 확장을 동시에 가능하게 하는 전략적 자산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C2C 시장은 글로벌 빅테크가 선점하지 못한 영역이라는 점에서도 기회 요인이 있다. e커머스 분야는 아마존·이베이 등이 굳건한 지배력을 갖고 있지만, C2C는 아직 절대 강자가 없는 미개척지다.
네이버 관계자는 “AI 생태계에서는 데이터의 다양성과 실제성이 경쟁력인데, 롱테일 데이터는 정교한 AI를 만드는 데 필수다”라며 “C2C는 기술과 기획으로 승부할 수 있는 영역으로, 버티컬 AI 에이전트와 같은 차별화된 기능을 통해 시장을 선점할 수 있다”고 말했다.
변인호 기자
jubar@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