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형 자산운용사들이 상장지수펀드(ETF) 시장에서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등락률 상위 ETF 대부분이 중소형사에서 나왔다. 대형사들이 갖추지 못한 상품을 발굴하거나 특색 있는 운용 전략을 펼친 결과다.
25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최근 3개월간 수익률이 좋은 ETF 종목 상위 10개 (레버리비·인버스 제외) 중 8종목이 중소형 운용사의 상품인 것으로 확인됐다.
상품별로 신한자산운용의 ‘SOL 미국양자컴퓨팅TOP10’가 66.6%로 가장 높았고 KB자산운용 ‘RISE 글로벌수소경제’가 56.4%로 뒤를 이었다. NH아문디자산운용 ‘HANARO 글로벌금채굴기업’ 51.5%, 한화자산운용 ‘PLUS 글로벌희토류&전략자원생산기업’ 49.6%, 한국투자신탁운용 ‘ACE 중국과창판STAR50’ 48.1%, 신한운용 ‘SOL 차이나육성산업액티브(합성)’ 44.2%, 한화운용 ‘PLUS 미국양자컴퓨팅TOP10’ 43.8% 등도 10위권에 속했다.
운용사(순자산 1조원 이상)별로 봐도 중소형사가 강세였다. 타임폴리오자산운용의 ETF 평균 등락률이 13.2%로 선두였다. 그다음 신한운용 11.8%, 미래에셋자산운용 11.1%, NH아문디운용 11.0%, 한투운용 10.6%, 한화운용 10.4%, 삼성자산운용 9.8% 등의 순이었다.
중소형사 선전은 특색 있는 ETF를 상품화한 것이 주효한 것으로 풀이된다. NH아문디운용이 작년 1월 상장한 ‘HANARO 글로벌금채굴기업’의 경우 뉴몬트, 애그니코 이글 마인스 등 글로벌 금 채굴 기업에 투자할 수 있는 국내 유일 ETF다. 금값 상승기에 경쟁사들이 금 선물·현물 ETF를 운용할 때 글로벌 금광업 ETF를 출시하며 차별화를 꾀했다. ETF뿐 아니라 전체 펀드 시장에서도 금채굴 기업에 투자하는 상품은 이 상품이 유일하다.
NH아문디운용 관계자는 “2023년 국제 금 가격이 온스당 2000달러 수준으로 형성되고 있었는데 금 가격이 지속 강세를 보일 수 있다고 전망했고 그런 가운데 금에 투자하는 차별화된 ETF 상품을 검토하다가 국내 시장에 금 채굴 기업 ETF가 상장돼 있지 않기 때문에 차별화된 상품출시가 가능하겠다는 판단해 작년 초 상품을 출시하게 됐다”고 말했다.
한화운용도 희토류에 투자하는 ETF 내놓으며 수익과 차별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았다. 2022년 1월 상장한 ‘PLUS 글로벌희토류&전략자원생산기업’은 미국의 엠피 머터리얼즈, 중국의 북방희토 등 희토류·전략자원을 생산·정제·재활용하는 글로벌 기업에 투자하는 ETF 상품이다. ETF·상장지수증권(ETN)·펀드 시장에서 ‘희토류’ 이름을 단 상품은 이거 하나다.
한화운용 관계자는 “희토류 등은 첨단산업의 필수 소재인데 미·중 무역 분쟁 심화로 자원 무기화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안정적 공급망 확보가 국가 과제로 떠올랐던 당시 시장 변화를 빠르게 캐치해 ‘PLUS 글로벌희토류&전략자원생산기업’을 출시했다”며 “최근 중국의 공급망 통제 등으로 희토류 가격이 상승하면서 ETF 편입 기업들의 주가도 상승했다”고 말했다.
평범한 테마임에도 차별화된 운용 전략을 통해 높은 성과도 올린 ETF도 있다. 신한운용의 ‘SOL 미국양자컴퓨팅TOP10’이 이 같은 사례다. 종목 편입 비중이 비교적 고른 경쟁 양자컴퓨팅 ETF와 다르게 신한운용은 양자컴퓨팅에 가장 적합한 상위 4개 종목(리게티컴퓨팅·디웨이브퀀텀·아이온큐·알파벳)의 비중을 70% 이상 설정하면서 상승률을 극대화했다.
김정현 신한자산운용 ETF사업총괄본부장은 “양자컴퓨팅을 대상으로 해 종목은 크게 다르지 않으나 비중에 차이를 뒀다”며 “양자컴퓨팅 산업의 성장을 오롯이 향유할 수 있는 리게티컴퓨팅, 디웨이브퀀텀, 아이온큐 비중을 높였고 그 결과 성과 측면에서 유효했다”고 말했다.
특화된 아이디어로 고수익을 올리고는 있지만 이들의 시장 점유율은 아직 미미하다. 일각에선 ETF 기초지수와의 상관계수가 70% 이상으로 묶인 액티브 ETF 규제를 완화하는 게 방법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김민기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ETF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투자자들 니즈에 부합하고 차별화된 상품이 필요한데 펀드 매니저의 역량과 재량이 더 많이 발휘될 수 있는 액티브 ETF가 (중소형사에) 기회가 될 수 있다”며 “(기초지수와의) 상관계수를 낮추거나 상관계수를 산출하는 방법을 유연하게 변경한다면 액티브 운용 제약이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윤승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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