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주력 사업인 메모리 반도체 부진 등 여파로 지난해 4분기 시장 전망치를 밑도는 실적을 기록했다.
올해 반도체 업황 악화가 예상되는 가운데 삼성전자는 첨단 공정 전환에 속도를 내는 한편 고사양 HBM(고대역폭 메모리) 판매 확대에 집중해 위기를 돌파하겠다는 전략이다.
HBM3E 개선 제품 1분기 공급…올해 HBM 공급량 2배↑
삼성전자는 지난해 4분기 연결 기준 매출 75조8000원, 영업이익 6조5000억원을 기록했다고 31일 밝혔다. 2024년 연간으로는 매출액 300조9000억원, 영업이익 32조7000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11.82%, 영업이익은 129.85% 증가했지만 전기 대비로는 매출이 4.19% 줄었고, 영업이익은 29.3% 감소했다.
특히 삼성전자는 지난해 4분기 반도체 사업에서 시장 전망치를 밑도는 2조9000억원의 영업이익을 내는 데 그쳤다.
영업이익이 전기 대비 크게 감소한 이유는 메모리 반도체 부진 탓이다. PC와 모바일 등 수요 침체와 중국발 저가 물량 공세로 주력인 범용(레거시) 메모리 반도체 판매가 줄었고, AI 시장 확대로 물량 증가를 기대할 수 있었던 HBM에서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삼성전자는 고사양 및 고용량 제품 수요 대응을 위한 첨단 공정 전환을 가속화할 방침이다. HBM은 5세대인 HBM3E 개선 제품을 올해 1분기 말부터 주요 고객사에 공급할 예정이다.
삼성전자는 이날 실적발표 후 콘퍼런스콜에서 "지난해 4분기에는 다수 GPU 공급사와 데이터센터 고객사에 HBM3E 공급을 확대하면서 HBM3E 매출이 HBM3 매출을 넘어섰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는 "최근 미국 정부에서 발표한 첨단 반도체 수출 통제 영향뿐만 아니라 당사의 개선 제품 계획 발표 이후 주요 고객사들의 기존 수요가 개선 제품 쪽으로 옮겨가며 HBM의 일시적 수요 공백이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며 "다만 2분기 이후 고객 수요는 8단에서 12단으로 기존 예상 대비 빠르게 전환될 전망이다"라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HBM3E 개선제품을 고객수요에 맞춰 램프업(가동률 향상)하며 올해 전체 HBM 공급량을 전년 대비 두배 이상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10나노미터(1나노=10억분의1m)급 D1c 공정 기반의 6세대 HBM4는 기존 계획대로 올 하반기 양산을 목표로 잡았다. 삼성전자는 "HBM4 및 HBM4E 기반의 커스텀 HBM 프로젝트들도 기존 계획에 맞춰 고객사들과 기술적 협의를 이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파운드리는 모바일 수요 부진 및 가동률 저하에 따라 실적 부진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했다. 삼성전자는 AI·HPC 등 응용처 및 첨단 공정 수주 확대를 위해 공정 성숙도 향상에 집중할 계획이다.
트럼프 정부 정책 변화 예의주시…로봇 사업 속도
삼성전자는 도널드 트럼프 2기 출범에 따른 대비도 철저히 대비한다는 계획이다.
삼성전자 측은 "미국 대선뿐 아니라 다양한 지정학적 환경 변화에 따른 기회와 리스크에 대해 다양한 시나리오를 기반으로 분석하고 대비해왔다"며 "향후 구체적인 정책 입안 과정을 면밀히 지켜보며 사업 영향을 분석하고 대응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스마트폰을 담당하는 모바일경험(MX) 사업도 신모델 출시 효과 감소 등으로 지난해 4분기 매출과 영업이익이 전분기 대비 하락했다. 이 기간 스마트폰과 태블릿 출하량은 각각 5200만대, 700만대를 기록했다. 스마트폰 ASP(평균판매가격)는 260달러(38만원)다.
삼성전자는 다음달 정식 출시하는 갤럭시S25 플래그십 모델 등을 중심으로 판매를 늘려 수익성을 개선한다는 계획이다. 하반기엔 갤럭시Z 폴드 7 등 폴더블폰 출시도 준비중이다. 삼성은 올해 플래그십 스마트폰 사업에서 매출 두자릿수 성장을 목표로 제시했다.
로봇사업에도 속도를 낸다. 삼성전자는 지난해말 대표이사 직속의 미래 로봇 추진단 신설을 계기로 올해는 휴머노이드와 같은 첨단 미래 로봇 개발을 신속하고 체계적으로 준비한다는 계획이다.
삼성전자는 "레인보우로보틱스의 창업 멤버인 오준호 교수가 단장을 맡고 당사의 젊고 유능한 로봇 인력을 배치했다"면서 "삼성전자의 AI 및 소프트웨어 기술과 레인보우로보틱스의 로봇 기술을 접목해 첨단 로봇 개발을 신속하고 체계적으로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전반에 드리운 위기설을 일축하는 발언도 이어졌다.
삼성전자 미래전략실 출신인 박순철 신임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삼성전자의 성장 역사를 보면 항상 근본 경쟁력과 기술력을 바탕으로 위기때마다 성장해왔다"며 "지금의 이슈 또한 새로운 도약을 위한 성장의 기회로 믿고 있다"고 말했다.
박 CFO는 이어 "현재 경영 현황이 쉽지 않음을 경영진 모두가 알고 있으며 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다양한 사업 포트폴리오와 주요 사업의 경쟁력을 바탕으로 현재 이슈는 점차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반드시 짧은 시간 내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선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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