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각국에 적용했던 상호 관세 유예기한이 하루 앞으로 다가오면서 삼성전자와 LG전자, SK하이닉스 등 우리나라 반도체·가전 업계가 막판 협상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협상 결과에 따라 수출 전략 전반의 수정이 불가피할 수 있어, 유예 종료와 새로운 조세 정책 시행을 둘러싼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6일(현지시각) 무역협상 대상국에 관세 부과와 관련한 서한을 발송하고, 9일까지 협상을 마무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앞서 12개국을 대상으로 한 상호 관세율이 명시된 서한에 서명했다. 한국 정부는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을 워싱턴DC로 급파해, 미국 무역대표부(USTR)와 관세 유예 시점 연장을 협의 중이다.
관건은 한국이 이 서한을 수령할 경우 적용될 관세율이다. 미국은 2024년 한국과의 무역에서 660억달러의 적자를 기록했다며 한국에 25%의 관세를 예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서한과 관련해 “관세율은 10%에서 70%까지 다양하게 적용될 것이다”라고 밝혀 정확한 수준은 예측하기 어렵다.
가전업계, ‘베트남 효과’에 숨통…환적 리스크는 여전
가전업계는 생산기지가 집중된 베트남에서 관세 부담을 일부 줄일 수 있게 됐다. 미국은 2일(현지시각) 베트남과 무역협정을 체결해 상호 관세율을 기존 46%에서 20%로 낮추기로 했다. 이에 따라 베트남에 주요 생산시설을 둔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일정 부분 가격 경쟁력을 회복할 수 있게 됐다.
삼성전자는 베트남 박닌성과 타이응우옌성에서 전체 스마트폰 생산량의 약 50%를 생산 중이며, LG전자는 하이퐁 공장에서 냉장고 등 주력 가전을 제조하고 있다. 인도(26%)와 한국(25%)보다 낮은 베트남 관세율은 단기적으로 호재로 작용할 수 있다.
다만 미국은 중국산 제품의 우회 수출을 차단하기 위해 베트남을 경유한 제3국 '환적 상품'에 최대 40%의 고율 관세를 부과할 방침이다. ‘환적 상품’이란 외국에서 생산된 부품 또는 제품이 베트남을 거쳐 미국으로 수출되는 경우를 말한다. 미국 정부는 아직 환적 판단 기준을 명확히 제시하지 않았다.
국내 가전제품 상당수는 한국에서 부품을 조달해 베트남에서 조립한 후 미국으로 수출하는 구조를 갖고 있어, 환적 적용 여부에 따라 관세 부담이 달라질 수 있다. 불확실성이 여전히 큰 셈이다.
LG전자는 이 같은 리스크에 대비해 생산기지 다변화를 가속화하고 있다. 베트남 하이퐁 공장에서 냉장고 일부 생산을 중단하고 해당 물량을 멕시코 몬테레이 공장으로 이전했다. 미국 테네시주 클락스빌 공장에서는 세탁기·건조기 생산 비중을 확대하며 현지화 전략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상호관세 자체는 부담스럽지만, 최악의 시나리오는 피한 분위기”라며 “한국을 포함한 다른 국가와의 추가 협상 결과에 따라 기업들의 대응 전략도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반도체 업계 ‘트럼프 세법’ 통과 여부에 촉각
반도체 업계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추진해온 ‘하나의 크고 아름다운 법안(OBBBA)’의 향방에 주목하고 있다. 최근 상원을 통과한 이 법안은 반도체 세액공제를 최대 35%까지 확대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 미국에 대규모 투자를 진행 중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실질적인 재무적 혜택이 기대된다.
삼성전자는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제2파운드리 공장을 건설 중으로 2026년 가동을 목표로 4나노 이하 첨단공정 양산을 준비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인디애나주 웨스트 라피엣시에 고대역폭 메모리(HBM) 패키징 센터 설립을 검토 중이다.
법안이 하원까지 통과할 경우, 두 회사는 미국 내 투자 타이밍과 규모를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하원 통과는 불확실하다. 일부 공화당 강경파는 해당 법안이 “무기력하다”며 반대하고 있으며, 민주당도 반대표를 예고한 상태다. 상원에서는 찬반이 50대 50으로 갈렸고, JD 밴스 부통령의 캐스팅보트로 간신히 통과됐다.
전자·반도체 업계는 상호관세뿐 아니라, 향후 품목별 고율 관세 부과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고 수출 전략 전면 재조정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동차(25%), 철강·알루미늄(50%)에 관세를 부과한 것처럼 반도체와 스마트폰에도 별도 관세를 도입할 수 있다”고 밝혔다.
삼성전기 등 일부 전장 부품업체는 이미 영향을 받고 있다. 삼성전기는 멕시코에 계획 중이던 자동차 전장용 카메라모듈 공장 건설을 잠정 보류하고, 관세 리스크를 반영한 투자 재조정에 들어갔다.
이선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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