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보생명의 지주 전환에 속도가 붙으면서 신창재 회장 두 아들에게도 자연스레 시선이 쏠리고 있다. 두 사람 모두 회사 내 주요 직책을 맡고 있지만, 교보생명 지분은 단 한 주도 보유하고 있지 않다. 향후 증여세 부담과 경영 성과 입증이라는 과제를 감안해 본다면 신 회장이 풀어야 할 방정식이 그리 단순하지 않아 보인다.
장·차남 경영성과… 승계 방정식 첫 과제
18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신창재 회장의 두 아들은 현재 그룹의 디지털 전환을 이끌고 있다. 장남 신중하 상무는 그룹의 데이터 전략을, 차남 신중현 실장은 자회사에서 디지털 보험 실험에 매진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형제의 성과에 따라 승계 방정식이 풀릴지, 오히려 더 복잡해질지 엇갈릴 것”이라고 점치고 있다.
장남 신중하 상무는 1981년생으로 미국 뉴욕대 경제학과와 컬럼비아대 MBA를 마쳤다. 크레디트스위스 서울지점에서 금융 커리어를 시작한 이후 2015년 교보생명 자회사인 KCA손해사정에 입사하며 본격적으로 그룹에 발을 들였다. 이후 교보DTS에서 디지털 전환 프로젝트를 맡았다.
교보DTS에서 디지털 신사업을 총괄한 그는 2022년 그룹데이터전략을 담당하며 교보그룹 차원의 데이터 협력 체계 구축에 나섰다.
2023년 말 임원으로 승진하면서 AI 활용·VOC(고객의견) 데이터 담당 겸 그룹경영전략담당에 올랐다. 지주전환 이후 그룹 전체의 청사진을 짜야 하는 본사 핵심 보직이다.
신창재 회장은 곧잘 장남 사업에 힘을 실어주기도 했다. 신 회장은 올해 창립 67주년 기념식에서 “VOC를 경영 전반에 적극 반영하자”고 강조하며 핵심 과제임을 강조했다. 회장이 직접 챙기는 아젠다를 장남에게 위임한 것을 두고 사실상 밀어주기라는 시각이 제기된다.
다만 업무 성격상 가시적 성과가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은 한계로 꼽힌다. 그룹 전략·데이터 업무는 계열사 시너지와 장기 청사진을 설계하는 과정이기에, 수치화된 실적보다 내부 기반을 다지는 데 무게가 실릴 수밖에 없다. 결국 신 상무에게 주어진 과제는, 지주 전환과 함께 본사 전략을 어떻게 실질적 성과로 연결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평가다.
차남 신중현 실장은 1983년생으로 미국 컬럼비아대와 영국 런던비즈니스스쿨에서 MBA를 마친 뒤 일본 SBI스미신넷뱅크와 SBI손해보험에서 경영기획·전략 업무를 맡았다.
신중현 실장은 SBI에서 단순 금융 실무뿐 아니라 일본 특유의 꼼꼼한 기업문화를 답습했다. 교보 내부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신중현 실장이 일본식 기업문화에 익숙해지면서 매우 보수적이고 꼼꼼한 업무 스타일을 체득했다”는 평가가 있다. SBI에서 몸으로 익힌 문화가 그의 성향에 녹아든 결과로 해석된다.
2020년 교보라이프플래닛에 합류한 그는 디지털 전략 매니저에서 출발해 팀장을 거쳐 현재 디지털전략실장을 맡고 있다. 상품·데이터·플랫폼 전략을 총괄하며 자회사의 디지털 전환을 지휘하고 있다. 2024년에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AWS 글로벌 행사에서 ‘365플래닛’ 서비스를 직접 소개하며 대외 무대에 얼굴을 비췄다.
그러나 신 실장이 몸 담은 교보라이프플래닛 실적은 부진하기만 하다. 출범 이후 단 한 차례도 흑자를 내지 못하면서 누적 적자는 2000억원을 넘어섰다. 올해 상반기에도 79억원 손실을 기록했다. 교보생명이 7차례에 걸쳐 총 3650억원을 수혈했음에도 체질 개선은 요원한 상태다.
게다가 교보생명 본사 자체가 e보험 시장을 직접 강화하면서, 자회사의 존재감은 더 옅어졌다. 현재 교보생명은 ‘교보e독서안심보험’, ‘교보e출산안심보험’, ‘교보e연금저축보험’ 등 본사 주도의 상품이 잇따라 출시하고 있다.
내부에서도 본사가 e보험을 키우는 데에 의문을 품는 시각이 상당한 것으로 전해진다. 라이프플래닛을 디지털 전위부대로 세워온 기조와 배치되는 행보여서다. 신 실장이 성과를 증명할 수 있는 길이 더욱 좁아지면서, 결국 자력으로 흑자 전환을 이루는 것 외에는 선택지가 없다는 게 업계의 냉정한 평가다.
전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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