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보생명만큼 상장의지에 불탔던 회사도 드물다. 시장에서는 빅3 생보사 가운데 유일한 비상장사라는 꼬리표가 늘 따라붙었고, 신창재 회장도 기업공개(IPO)를 ‘생존의 문제’라 부르며 수차례 도전에 나서기도 했다.

교보생명 광화문 본사 전경 / 교보생명
교보생명 광화문 본사 전경 / 교보생명

이같은 교보의 IPO 시도 이면에는 재무적투자자(FI)인 어피니티컨소시엄과의 피말린 분쟁이 자리했다. 자본 확충 압박에 더해, FI와의 계약에 따라 일정 시점 안에 상장을 추진해야 하는 강제성까지 얽혀 IPO는 교보에 애증의 과제가 됐다.

교보생명 IPO, 왜 번번이 무산됐을까

16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교보생명이 본격적으로 IPO 압박을 받게 된 건 20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대우인터내셔널이 보유한 지분 24%를 어피니티컨소시엄이 1조2000억원에 인수했다. 이때 신창재 회장은 2015년 이내 상장을 약속했다. 합의에 미달하면 FI가 풋옵션을 행사할 수 있는 조건도 붙었다.

해당 조항으로 교보생명은 시장 상황이나 회사 사정과 무관하게 상장을 반드시 해야 하는 압박이 생겼고, IPO는 전략적 선택이 아닌 투자자 계약 이행 문제가 됐다. 결국 이것이 교보생명의 13년을 옭아매는 족쇄로 작용했다.

2015년까지로 약속했던 상장은 결국 성사되지 못했다. 국내 자본시장 침체와 밸류에이션 부담, 경영권 우려가 겹치면서 기회를 잡지 못한 것. 그 결과 FI에게는 풋옵션을 행사할 권리가 생겼고, 교보는 언제든 ‘지분 매각 요구’에 직면할 수 있는 상황에 놓였다.

본격 갈등이 시작된 건 2018년부터다. 당시 교보생명은 NH투자증권을 대표주관사로 선정하며 다시 IPO를 추진했지만, 어피니티컨소시엄은 안진회계법인이 산정한 주당 41만원을 근거로 풋옵션을 행사키로 했다. 이는 매입가(주당 24만5000원)보다 70% 가까이 높은 금액이었다. 신 회장은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거부했고, 결국 사태는 국제상업회의소(ICC) 중재로 번졌다.

ICC의 첫 판정은 신 회장 손을 들어줬다. 계약 자체는 유효하다고 인정했지만, 어피니티가 제시한 41만원을 신 회장이 반드시 수용해야 할 의무는 없다는 결론이었다. 

하지만 분쟁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어피니티는 다시 중재를 신청했고, 2차 절차에서는 가격 산정 방식을 두고 공방이 이어졌다. FI는 여전히 높은 가치 평가를 주장했지만, 교보는 시장 상황과 재무 건전성을 반영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FI와의 풋옵션 분쟁이 지속되면서 교보의 IPO 추진은 사실상 멈춰섰다.

신창재 회장 생존 호소에도… 넘지 못한 상장 문턱

교보생명은 풋옵션 분쟁을 끝내기 위해서라도 IPO를 택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투자자 갈등을 해소하지 못하면 불확실성이 지속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신창재 교보생명 이사회 의장 및 회장 / 교보생명
신창재 교보생명 이사회 의장 및 회장 / 교보생명

실제 신창재 회장은 2022년 직접 한국거래소 상장예비심사 현장에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대기업 총수가 심사장에 등장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었다는 게 당시의 평가다. 그는 “IPO는 교보의 생존 문제”라며 절박함을 드러냈다.

그러나 현실의 벽은 높았다. 풋옵션 분쟁 등이 여전히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거래소가 IPO 승인을 내줄리는 만무했다.  신 회장은 뉴욕·홍콩·런던·상하이 등 해외 상장까지 검토했지만, 실행 단계에 이르지는 못했다.

반복된 IPO 무산은 투자자들에게 피로감만 안겼다. 신 회장 역시 이같은 시장의 시선을 의식해 “시장의 냉소 속에 장난으로 IPO를 하는 회사가 어디 있느냐”고 항변했지만, 이는 곧 IPO가 교보에 굴레로 작용했음을 보여주는 방증이기도 했다.

마무리 국면 접어든 풋옵션 분쟁, 달라진 IPO 의미

10년 넘게 교보생명을 옭아매던 풋옵션 분쟁이 최근 마무리 국면에 접어들면서 IPO 부담은 크게 줄어든 모습이다. ICC 2차 중재 절차가 정리되고, 주요 FI 보유 지분 매각이 이어지면서 억지로 상장을 해야 하는 상황에선 벗어났다. 

특히 어피니티가 보유했던 교보 지분 9.05%를 처분했고, 싱가포르투자청(GIC) 역시 지분을 매각하며 FI 색채가 상당 부분 희석됐다. 이로써 투자자 갈등에 끌려 다니던 국면에서 벗어나, 교보는 회사 진로를 보다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여지를 확보했다.

IPO는 더 이상 단순한 자본 조달 수단이 아니라, 지배구조 개편과 승계 문제까지 맞물린 교보의 향후 경영 구도를 좌우할 전략 카드로 성격이 달라졌다.

전대현 기자
jdh@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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