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이 진보하고 새로운 개념의 제품이 나올 때마다 기존 규제는 혁신을 가로막는 ‘걸림돌’로 취급되곤 한다. 하지만 적절한 규제는 혁신의 길을 만드는 역할을 기대할 수 있고, 이러한 ‘적절한 규제’를 만들기 위한 방법론으로 ‘규제과학’ 개념이 국내에도 본격적으로 도입되고 있다.
14일 서울 강남구 한국과학기술회관서 열린 월드푸드테크 2025 컨퍼런스의 ‘식품의약품안전처 X 푸드테크규제과학’ 세션에서는 최신 기술의 발전을 지원할 수 있는 규제 구축을 위한 ‘규제과학’ 개념이 소개됐다. 이 세션은 이승용 동국대학교 교수가 좌장을 맡아 임현진 식품의약품안전처 규제과학정책추진단장, 김영준 고려대학교 교수, 이상준 월드푸드테크협의회 기획조정실장이 발표를 진행하고, 김승태 대상 상무와 진해수 조인앤조인 대표가 패널로 참여했다.
임현진 식품의약품안전처 규제과학정책추진단장은 이 자리에서 정부 차원의 규제과학혁신정의 추진 성과와 방향성을 제시했다. 임현진 단장은 “기술이 진보하면서 새로운 개념의 제품이 나오고, 리스크와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기술과 규제의 간극이 커진다”며 “이를 메꾸는 존재가 규제과학이다. 전통적 규제는 안되는 것을 정하는 것이 많았다면, 이제는 길을 찾아주고 만드는 형성적인 역할의 규제가 중요해졌다”고 밝혔다.
국내에서 규제과학은 2021년 바이오헬스 규제과학 발전전략이 수립, 발표되면서 본격적으로 도입됐다. 그리고 식의약규제과학혁신법의 시행 이후 규제과학의 연구개발 방향성으로는 사람 중심, 혁신성장과 미래대응, 국제조화 선도, AI와 디지털 전환 이용의 시스템 고도화 등이 꼽혔다. 예산 또한 꾸준히 늘고 있으며, 편성 방향도 부처간 협업 강화와 출연연구 사업의 예산 증가 등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임현진 단장은 “연구개발 현장에서 규제 관련 내용을 잘 모르는 상황이 많다”며 기술의 제품화 지원을 위한 규제 지원 사업을 소개했다. 이 사업은 기획 단계에서부터 연구에 대한 규제정합성을 검토하고, 제품화 지원에서도 신속심사 지원으로 빠른 제품화를 지원하는 내용 등이 담겨 있다. 이미 인공혈액 개발 관련 사업 등 몇몇 사업에서 활용됐고, 지금은 대상이 식품, 신개발 의료기기 등으로 확대됐다. 이 외에도 규제과학 인재양성 사업도 내년부터 2기가 시작되며 산학연관 협력을 강화한다고 덧붙였다.
김영준 고려대학교 교수는 규제과학을 이용한 건강기능식품 개발에 대해 소개했다. 김영준 교수는 “건강기능식품은 신기술 접목이 수월하며, 신기술 접목이 필요한 시장”이라며 “언젠가는 건강기능식품의 개발, 평가, 산업화에 기반 기술이 되어야 할 것”이라 말했다.
이어 “규제과학이 제공하는 데이터가 국제화, 산업화에 도움이 되어야 하는데 우리는 아직 기준이 보수적이다”라며 “외국에서 충분히 검증된 경우는 열린 자세로 접근할 필요도 있다. 과학적 기반을 통한 유연한 규제 개선과 기업 책임성 강화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신기술을 활용한 기술개발 전략에는 인공지능(AI) 도입을 통한 후보 물질 탐색과 스크리닝 등을 통해 연구시간 단축과 효율성 향상, 새로운 담론 도출 등을 기대할 수 있다고 제시했다. 또한 한 개의 원료가 여러 기능성을 가지는 동시기능성 물질의 경우 한 번의 실험으로 여러 기능성을 동시에 평가할 수 있도록 하는 연구도 필요할 것이라 제시했다.
이상준 월드푸드테크협의회 기획조정실장은 “해외 시장 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푸드테크 산업 육성을 위한 법률이 공표되면서 정책지원이 본격화됐다”고 말했다. 또한 안전 기술에 대해서는 “신기술이 적용된 식품이 확대되는 상황에서 규제 관련 수요가 늘었다. 기술 발전 속도가 빠른 만큼 이를 규제에 담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추세”라고 언급했다. 대체육과 배양육 시장에서 기업들의 대표적인 어려움으로는 ‘제품 허가 및 시장 진입 어려움’이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덧붙였다.
월드푸드테크협의회는 이러한 기업들의 어려움 해결을 지원하기 위해 식품의약품안전처와 협력해 ‘신기술 적용 식품 안전 기술 지원’ 사업을 진행한다. 이 사업에는 기업 대상의 컨설팅과 전문인력 양성, 글로벌 네트워크 도모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실시할 기업 대상 컨설팅은 각 지역의 푸드테크 연구지원센터와도 연계할 계획이다. 인력양성교육 또한 연구지원센터와의 연계하고, 연구지원센터의 프로그램과 연계해 지역 기업에도 확산을 도모할 계획이다.
이어진 패널 토의에서는 발표자와 함께 김승태 대상 상무와 진해수 조인앤조인 대표가 패널로 참여했다. 이 자리에서 김승태 대상 상무는 “푸드테크에서 ‘공정’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며 “이물 제어 기술의 경우 지금은 AI 기반 기술까지 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완벽하지는 않다. 기업에서 하나의 아이템으로 연구개발은 어려운 상황이고, 이런 부분에 대한 연구도 계속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한 “유통에서도 다양한 채널로 제공되는 정보를 제대로 관리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AI의 도움을 받는 방법을 고려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이와 함께 “생명공학 측면에서 GMO(유전자변형생물)는 현재의 식량 사정 등을 봤을 때 사장시키기 아까운 기술”이라며 “소비자 인식 개선 없이는 신기술 적용에 한계가 있다. 인식 개선이 함께 따라와야 한다”고 제시했다.
이상준 월드푸드테크협의회 기획조정실장도 “사회적 수용성도 민감한 사항이다. 이러한 사회적 수용성과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한 소비자 알권리에 대한 충족과 교육이 필요할 것 같다. 소비자들의 인식적 개선이 선행돼야 제도적으로 뒷받침되고 시장에 수용될 수 있을 것이다”라며 “협의회가 이러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역할을 해야 할 것 같다. 기본적으로는 소비자들에 선택권을 주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하며, 다만 초기부터 부정적인 인식을 주는 표기법들은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권용만 기자
yongman.kwon@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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