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한국 기업의 중국 반도체 공장에 ‘미국산 장비를 자유롭게 들여올 수 있도록 허용했던 예외 조치’를 없애기로 했다. 이로 인해 두 회사의 중국 공장 운영에 차질이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31일 산업통상자원부와 블룸버그 등 외신에 따르면 미국 상무부 산업안보국(BIS)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중국 공장을 ‘검증된 최종 사용자(VEU·Validated End-User)’ 적용 대상에서 제외했다.
미국 정부는 2022년부터 중국 반도체 산업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산 장비의 중국 반입을 금지해왔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그동안 VEU로 지정돼 예외적으로 중국 공장에 미국산 장비를 반입할 수 있었다.
이번 VEU 제외 조치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중국 내 공장 운영에 차질이 발생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VEU 지정은 2023년 당시 조 바이든 행정부가 한국 반도체 업체이 중국에서 대규모 사업을 유지하고 확장하는 데 필요한 장비를 확보할 수 있도록 허용하면서 시작됐다. VEU 지위가 철회된 기업에는 120일의 유예기간이 주어진다. 이후에는 미국산 첨단 반도체 장비를 중국에 반입하려면 건별로 미국 상무부의 수출 허가를 받아야 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중국과 분리를 쉽게 선택할 수 없는 상황이다. 중국은 두 기업의 메모리 반도체 사업에서 핵심 시장이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중국 시안에서 낸드플래시 공장을, 쑤저우에서는 반도체 후공정(패키징)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 삼성전자의 중국 관련 매출은 64조원에 달했다. SK하이닉스는 우시에 D램 공장, 충칭에 패키징 공장, 다롄에 낸드플래시 공장을 보유하고 있으며, 지난해 중국 매출은 13조원이다.
미국 상무부는 성명을 통해 “중국 내 제조 시설의 생산 능력 확장이나 기술 향상을 허용하는 라이선스를 부여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미국 제조업체에는 이익이 되지 않고 외국 업체에만 혜택이 돌아가는 특혜를 종료하는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블룸버그는 글로벌 리서치 기업 번스타인의 분석을 인용해 “이번 VEU 제외가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공급망에 영향을 줄 것이다”라고 보도했다. 중국 내 외국계 기업이 반도체 장비에 지출한 금액은 전체 장비 매출의 약 2% 수준인 20억달러(약 2조7834억원) 정도지만 세계 컴퓨터용 메모리의 10%, 저장장치 칩의 15%가 중국에서 생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제품은 스마트폰과 엔비디아 AI 하드웨어 등에 사용되는 핵심 부품으로 꼽힌다.
제프리 케슬러 미국 상무부 수출통제담당 차관보는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 기업을 경쟁열위에 빠뜨리는 수출통제의 허점을 막는 데 전념하고 있다”며 “이번 결정은 이를 위한 중요한 조치다”라고 말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정부는 그간 미국 상무부와 VEU 제도 조정 가능성과 관련해 긴밀히 소통해왔다”며 “우리 반도체 기업의 원활한 중국 사업장 운영이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안정에 중요하다는 점을 미국 정부에 지속적으로 강조해왔다”고 밝혔다. 이어 “VEU 지위가 철회되더라도 우리 기업들이 받을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미국 정부와 계속해서 긴밀히 협의하겠다”고 덧붙였다.
변인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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