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생명보험사가 입원비로 지출한 금액이 매달 최대치를 갈아치우고 있다. 금융당국의 거듭된 경고에도 단기 실적 제고를 위한 과열경쟁이 계속된 영향이다. 시장 건전성을 해치는 구조적 문제로까지 번지면서 보험사와 가입자 모두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지적이다. 

국내 생명보험사가 입원비로 지출한 금액이 연일 최대치를 갈아치우고 있다 / DALL-E
국내 생명보험사가 입원비로 지출한 금액이 연일 최대치를 갈아치우고 있다 / DALL-E

21일 생명보험협회에 따르면 올해 5월까지 국내 생보사 22곳이 고객에게 지급한 입원급여금은 5조568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5조1543억원보다 4000억원 넘게 증가했다. 입원급여금은 말 그대로 보험가입자가 병원에 입원한 경우, 보험사가 지급한 금액을 말한다. 해당 항목에는 입원비뿐 아니라 간병인 사용으로 인해 발생한 비용도 포함된다.

생보사 입원급여금은 2021년말 처음으로 10조원 대를 넘어선 이후 매년 최대치를 갈아치우고 있다. 지난해 생보사 22곳이 지출한 입원급여금만 12조3185억원에 달한다. 업계 안팎에서는 올해 역시 ‘사상 최대치’ 경신이 유력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보험사별로 보면 삼성생명의 5월 누적 입원급여금 지출이 1조4448억원으로 가장 많았다. 전년 동기 1조3425억원 대비 7.6% 증가했다. 이어 ▲한화생명 9378억원 ▲교보생명 6485억원 ▲라이나생명 4895억원 ▲신한라이프 4016억원 등 순으로 모두 늘었다. 

입원급여금이 불어난 배경에는 생보사간 특약 경쟁이 자리한다. 실적 제고를 위해 가입자 유치가 급하다보니 무리한 조건을 내걸고 고객 유치에 뛰어들었다. 그러다보니 실제 발생한 의료비 지출보다 많은 금액의 입원비와 간병인 사용일당을 보장하면서 지출액이 크게 뛰었다.

실제 삼성생명이 업계 최초로 ‘1인실 입원일당 담보’를 내놓은 이후 일부 생보사들은 최대 50만원이 넘는 고액 보장을 내걸면서 소비자 유치에 사활을 걸었다. 그 결과 병원 현장에서는 불필요한 1인실 입원 수요가 증가했다.

당국은 이를 ‘도덕적 해이’를 부르는 과잉보장으로 보고 제동을 걸었다. 금융감독원은 지난해 ‘보험상품 보장금액 한도 산정 가이드라인’을 마련, 올해 1월1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가입자가 실제 지출한 의료비보다 과도한 보험금을 받지 못하도록 한 것이 골자다. 그 결과 1인실 입원일당 과열 경쟁은 일단락됐다.

하지만 불씨가 ‘간병인 사용일당’에 옮겨붙었다. 병원 입원 시 간병인을 고용하면 하루 20만원까지 지급하는 상품들이 잇따라 출시되면서, 시장은 또다시 과열 양상을 보이고 있다. 현재에도 농협생명, KB라이프생명 등 주요 생보사가 간병인 사용일당 20만원을 내세우며 판매를 이어가고 있다. 

문제는 간병인 사용일당 담보 손해율이 이미 ‘심각한 수준’이라는 점이다. 업계에 따르면 일부 손보사들의 어린이 간병인 특약의 손해율은 600%까지 올랐고, 성인 담보도 300~400%까지 치솟았다. 이는 보험사가 거둬들인 보험료보다 수배 많은 보험금을 지급하고 있다는 뜻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생보사들이 손보사가 흡수하지 못한 고객을 간병 특약으로 유치하면서 전반적인 부담이 가중된 것은 사실”이라며 “간병인 일당특약의 경우 오남용하는 가입자도 상당수라 장기보험심사 부서들이 특히 신경쓰는 상품”이라고 말했다.

금융감독원 역시 우려를 감추지 않고 있다. 금감원은 지난해 11월 간병보험 상품의 과도한 보장이 도를 넘어선 것으로 판단했다. 

금감원은 “일부 약관이 미흡해 간병 서비스를 형식적으로만 이용해도 보험금이 지급되는 문제가 있다”며 “간병인 계약서·근무일지 등 증빙을 요구하는 방식으로 보험금 지급사유를 “실질적 간병서비스를 이용한 경우”로 제한하고 이를 확인하기 위한 추가 증빙서류 요청 가능 조항을 신설해 보험금 과다 청구 등 도덕적 해이가 발생하지 않도록 유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시장에서는 입원급여금 급증이 장기적으로 보험료 인상을 부추기고, 소비자 신뢰를 훼손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보험사가 비용을 줄이지 못한다면, 손실은 고스란히 보험료 인상으로 전가될 수밖에 없어서다. 

김대종 세종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생보사들이 저성장 국면에서 무리하게 보장 경쟁에 나선 결과, 입원급여금 지출이 통제 불능 수준으로 치닫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보험사들의 과도한 비용 지출은 결국 보험료 인상으로 작용해 선량한 가입자들이 피해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전대현 기자
jdh@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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