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에 사는 40대 직장인 A씨는 최근 전세 계약 만료를 앞두고 난감한 상황에 처했다.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규제가 강화되면서 은행권 대출이 제한돼서다. 계약금을 보탤 여력이 없던 A씨는 가입해 둔 보험을 담보로 대출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됐다. 덕분에 보험사 홈페이지를 통해 1500만원을 빌릴 수 있었다. 잔금을 무사히 치를 수 있었지만, 그 역시 “이제는 이런 통로마저 좁아질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하반기 금융당국의 강도 높은 대출 규제가 본격화되면서, DSR 적용을 받지 않는 ‘틈새 대출’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대표적인 상품이 보험사 ‘보험계약대출’이다. 그러나 이마저도 쏠림 현상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보험사들이 앞다퉈 문턱을 높이는 추세다. 당국 규제를 피한 풍선효과가 결국 또 다른 대출규제로 이어지는 모양새다.
27일 금융권에 따르면 현대해상은 이날부터 일부 상품에 대한 보험계약대출 한도를 줄이기로 했다. 그동안은 적립된 해약환급금의 최대 95%까지 대출을 받을 수 있었으나, 앞으로는 보장 해약환급금의 60% 이내로만 가능하다. 적용 대상 상품은 2009년 12월 31일 이전 체결된 ‘적립대체납 상품’이다.
아울러 기존 대출을 상환한 뒤 재신청할 경우, 과거보다 더 적은 금액만 받을 수 있다. 소비자들이 유념해야 할 부분이다. 현대해상 관계자는 “안정적인 보험계약 관리와 대출 총량을 일정 수준 유지하는 차원에서 보험계약대출 한도를 조정했다”고 말했다.
보험계약대출은 계약자가 갑작스럽게 자금이 필요할 때 보험을 해지하지 않고도 해약환급금을 담보로 돈을 빌릴 수 있는 제도다. 적립금의 일정 비율을 대출받을 수 있어 보험을 유지하면서도 대출을 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한도는 보통 해지환급금의 50%에서 최대 95%까지 가능하다. 예컨대 해약환급금이 1000만원인 고객은 최대 950만원을 빌릴 수 있다. 대출받은 원리금은 중도상환수수료 없이 언제든 상환할 수 있다. 보험계약을 담보로 하는 만큼 신청 절차도 간단하다.
다만 최근 손해보험사들이 판매하는 상품 가운데는 해약환급금이 없거나 적게 설정된 경우가 많다. 실제 대출을 고려하는 소비자라면, 본인이 가입한 보험이 약관대출이 가능한 상품인지 사전에 확인해야 한다.
금리도 낮은 편이다. 지난달 기준 손해보험사 11곳의 금리연동형 약관대출 평균 금리는 2.26%다. 같은 기간 5대 시중은행(신한·KB국민·하나·우리·NH농협은행)의 신규 코픽스 기준 전세자금대출 평균 금리 3.69%보다 저렴하다. 이 때문에 주택 잔금을 마련하려는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사실상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의 마지막 보루로 통한다.
그러나 이달 들어 약관대출 잔액이 급증할 것이란 우려가 현실화되면서 분위기는 달라졌다. 보험사들은 과도한 대출이 보험계약 해지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보고, 대출총량 관리 차원에서 선제적 조치에 나서고 있다.
실제 메리츠화재·삼성화재·현대해상·KB손해보험·DB손보 등 5개 주요 손보사의 지난달 약관대출 잔액은 2022년 초에 비해 1조원 가량 증가한 14조8055억원으로 집계됐다. 하반기 약관대출 수요가 더욱 몰릴 것을 우려해 대출 한도에 고삐를 죄고 있다.
삼성화재는 지난 5월 일부 상품의 약관대출 한도를 해지환급금의 50%에서 30%로 줄였다. NH농협생명도 지난 3월 종신형 연금상품의 대출 한도를 기존 95%에서 50%로 낮췄다. 이밖에 DB손보 등 주요 보험사들도 한도 조정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약관대출은 DSR 규제 대상에서 벗어나 급전이 필요한 서민들이 주로 찾는 상품이지만, 최근 수요가 몰릴 것을 감안해 대출총량을 맞추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며 “전체 대출 한도를 줄이는 방식으로 진행되면서 기존보다 대출을 받기 어려워 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전대현 기자
jdh@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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