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이 금융위원회 설치법 개정안을 발의하면서 금융감독 체계 개편 윤곽이 보다 명확해졌다. 금융감독위원회와 금융감독원, 신설되는 금융소비자보호원을 둘러싼 권한 재편이 본격화된 셈이다.
표면적으로는 금융소비자 보호 강화를 내세우지만, 물밑으로는 감독권·제재권·분쟁조정권을 둘러싼 치열한 줄다리기가 벌어지고 있다. 이 줄다리기가 길어지는 만큼 소비자 보호는 오히려 뒷전으로 밀리는 모양새다. 신임 금융위원장과 금융감독원장이 내부 분위기 수습에 나서지만 논란은 더욱 커지고 있다.
17일 국회와 금융당국에 따르면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금융위원회의 설치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개정안에는 금융위원회는 금융감독위원회로 재편되며 위원 수는 9명에서 10명으로 확대되는 내용이 담겼다. 기존 금감원장·한은 부총재·예금보험공사 사장이 명단에서 빠지고, 국회 추천 2명, 법원행정처장 추천 1명, 재정경제부 장관과 기획예산처 차관 등이 새롭게 포함된다.
금감위 산하에는 증권선물위원회에 이어 금융소비자보호위원회가 신설된다. 위원장은 금감위 부위원장이 겸임하며, 상임위원은 재경부 장관과 금감위원장 추천 인사 등 총 3명으로 구성된다.
조직 규모도 변한다. 금감원은 부원장 3명·부원장보 8명으로 줄고, 금소원은 원장 1명과 부원장 1명, 부원장보 최대 3명, 감사 1명을 두게 된다. 두 기관 모두 ‘무자본 특수법인’으로 세워지지만, 금소원에는 민원 업무를 감안해 검사권과 제재권이 함께 부여된다. 금소원 본부는 서울에 설치되고, 필요할 경우 출장소를 둘 수 있다.
문제가 되는 부분은 검사 권한이다. 개정안엔 금감원과 금소원이 소비자 보호나 감독 업무 수행이 필요하다고 판단할 경우 상대 기관에 공동검사를 요구할 수 있도록 했다. 검사 과정에서 상대 기관 소관의 위법·부당 사실을 발견하면 즉시 통보하도록 하는 조항도 신설했다.
공동검사가 오히려 혼란만 키운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대규모 소비자 피해 사건에 적용될 경우 독이 될 것이란 분석에서다. 조사 과정에서 충돌이 발생하거나 책임 소재에 있어 분란이 발생할 수 있다.
신설 기관의 원장이 금감위원회의 정식 멤버로 들어가는 만큼 위상도 달라진다. ‘건전성은 금감원, 소비자 보호는 금소원’으로 구분했지만 결국 두 기관은 공통 현안을 두고 공동검사, 역할 분담을 둘러싸고 충돌할 가능성이 크다.
겉으로는 소비자 보호 기능을 강화한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금감위 산하에 금감원과 금소원이 모두 놓이게 되면서 금감위의 권한 집중이 더 심화될 수도 있다. 또 금소위의 경우 위원장(금감위 부위원장 겸임)과 상임위원 모두 관료 출신으로 이뤄진다. 소비자를 위한 기구이지만 결국 관료 일색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이억원 금융위원장이 취임 직후 8대 금융지주 회장과 만나 소비자 보호를 당부하고 이억원 금감원장 역시 업권과의 릴레이 간담회에서 소비자 보호를 거듭 강조하고 있는 것과는 다른 분위기라는 지적이다.
이찬진 “정부 결정 충실히 집행”… 금감원 내부 반발 격화
반쪽짜리 권한을 가지게 되는 금감원 내부 반발은 더욱 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금소원이 금융상품 판매와 광고 등 영업 행위 감독을 하게 되고 검사·제재 권한까지 갖게 되면서 그 만큼 힘을 잃어서다.
금감원은 부원장과 부원장보 자리가 각각 1석씩 줄어들고 금융사 임직원에 대한 제재 권한도 축소된다. 금융사 영업 행위와 소비자 보호 업무를 제외한 모든 업권에 대한 검사·감독 기능만 유지하게 될 뿐이다.
금감원 노조는 “조직 분리는 효율성 저하와 독립성 훼손을 초래한다”며 반대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이날까지 엿새째 본원 로비에서 반대 집회를 이어가며 오는 18일에는 국회 앞에서 대규모 시위를 예고했다.
특히 이찬진 금감원장이 금융감독 체계 개편에 대해 수용한다는 입장을 밝히며 분위기는 더욱 경색되는 모습이다.
이 원장은 이날 금감원 임원회의에서 “금융감독체계 개편은 새 정부 출범 이후 국정기획위원회에서 수개월 논의와 당·정·대 협의를 거쳐 공식적인 정부 조직개편안으로 최종 확정된 사안”이라며 “금감원은 공적 기관으로서 정부 결정을 충실히 집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이세훈 수석부원장을 중심으로 입법 지원 태스크포스(TF)를 가동하라고도 지시했다. 여당이 발의한 금융감독위원회 설치법 후속 입법 과정에서 금감원의 의견을 적극 개진한다는 계획이다.
전날 이억원 금융위원장이 “공직자로서 국가적으로 최종 결정이 내려지면 그 정해진 결정에 따라야 하는 것도 우리의 책무이자 의무인 것도 엄중한 사실”에 이은 것으로 정부여당의 개편안에 사실상 따르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셈이다.
금감원 노조는 금감원 개편을 정부조직법에서 제외하고, 금융감독위원회 설치법은 패스트트랙(6개월 신속처리안건 지정)으로 처리되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경우 최대 330일이 소요되는데, 시간을 벌어 개정안에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한재희 기자
onej@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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